[脫北民 3만명 시대] [7·끝] 정착 성공한 사람들

요리 실력만 믿고 식당 개업, 임대 계약 실수로 실패 경험… 한국인 입맛 연구해 재창업
일거리 끊이지 않으려면 지역 주민의 신뢰 얻어야… 봉사활동도 좋은 방법

 

창업(創業)을 통해 남한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가 적잖다. 대다수는 식당·편의점·식품가공업·미용실·기계·금속업 등 소(小)자본 창업이다. 현재 탈북자가 대표로 있는 사업체가 100곳이 넘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탈북 가수 출신으로 해외에 진출, 연매출 300억원짜리 홈쇼핑 업체 회장이 된 김용(60)씨 같은 대박 창업자도 있다.

탈북자 허영철(53) 사장은 서울 신월동에서 북한 전문 방송 외주 제작 업체 '원코리아미디컴'을 12년째 운영하고 있다. 남한 출신을 포함해 직원 4명을 두고 있다. 그는 한국영상연구원을 졸업한 뒤 국내외 다큐멘터리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허씨는 "한국의 사업은 경기(景氣)를 심하게 탄다는 게 북한과 가장 큰 차이"라며 "이를 극복하려면 꾸준히 전문성과 인맥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북한에서 아나운서·배우를 하다 9년 전 탈북한 박지애(49)씨는 탈북 여성과 한국 남성을 연결시키는 '남과 북 결혼 정보 회사' 사장이다. 전국 기관·학교에 북한 관련 특강도 뛴다.
 

탈북자 출신으로 한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회사 대표들. 왼쪽부터 영상 제작 업체 사장인 허영철씨, 대기업 계열 편의점을 운영하며 미용실 창업을 준비 중인 황경순씨, 북한식 김치 업체를 경영하는 윤선희씨. /허영철·황경순·윤선희씨 제공
탈북자 출신으로 한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회사 대표들. 왼쪽부터 영상 제작 업체 사장인 허영철씨, 대기업 계열 편의점을 운영하며 미용실 창업을 준비 중인 황경순씨, 북한식 김치 업체를 경영하는 윤선희씨. /허영철·황경순·윤선희씨 제공

서울 목동에서 북한식 김치 업체 '선희식품'을 운영하는 윤선희(51)씨는 북한 국영 식당 책임자로 일하다 탈북했다. 요리 실력만 믿고 식당을 차렸다가 임대 계약 등에서 실수하면서 실패의 아픔을 겪었다. 윤씨는 "다시 요리학원에 다니며 한국인 입맛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북에선 들어보지도 못한 부동산 임대차 관련 법도 공부했다"고 했다. 이후 발품을 팔아 김치 판매 사업망을 뚫어 재창업에 성공했다. 최근엔 한식 요리로 대결하는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창업에 성공한 탈북자들은 소비자·이웃과 신뢰를 쌓고 지역사회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의 금속 가공 업체인 '대광금속'의 신광훈(41) 대표는 남한에 온 뒤 세차장 일을 하다 폴리텍대학에 진학했다. 용접 자격증을 취득하고 3년 전 공장을 세웠고, 지금은 상당수의 단골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신 대표는 "창업하려면 자격증은 있어야 한다"며 "나아가 지역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편의점을 경영하는 황경순(45)씨도 "편의점에서 일할 때 창고에서 먹고 자면서 돈을 모았다"며 "사장이 된 뒤로 매달 동네 복지관에서 노인들 머리를 깎아주는 봉사 활동을 한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탈북 창업자의 최대 강점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강한 의지, 악착같은 성실함과 손재주"라며 "그러나 기술·경력은 물론이고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와 고객 서비스 마인드, 이웃과 관계 맺는 데도 신경 써야 사업이 안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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