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노관순씨]

"北 보안원은 뺏으려고 혈안인데 언니는 첫날부터 모두 퍼주네요"

/이옥진 기자
/이옥진 기자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 두 중년 여성이 손을 꼭 잡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고 있다. 얼핏 자매처럼 보이지만, 40년 넘게 모르는 사이로 살아온 노관순(49·사진 왼쪽)씨와 김지영(가명·47·오른쪽)씨다.

둘은 2010년 여름 탈북자와 그를 보호하는 경찰(신변보호관)로 만났다. 서울 노원경찰서 보안과에서 노 경관을 처음 본 김씨는 "경찰이라기에 북한 보안원이 생각나 너무 무서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김씨가 딸(당시 14세)과 함께 탈북한 과정을 진술했을 때 노씨는 눈물을 펑펑 쏟았고, 그 눈물에 김씨도 마음을 열었다. "언니는 북한 보안원과는 아주 달라요. 보안원은 뺏어가려고 혈안인데, 언니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퍼주기만 해요."

노씨는 모녀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김씨를 취직시키려고 동분서주했다. 그해 가을 김씨는 북한 소식을 알리는 인터넷 매체에 취업했지만, 한국살이는 쉽지 않았다. 북한의 노모(老母)도 한국으로 탈북시키려고 억척같이 돈을 모았는데, 주위 사람들은 "북에서 와서 그런지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고 손가락질했다.

2013년 1월 어느 날 노씨는 남한 생활에 안착한 줄 알았던 김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언니, 저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요." 놀란 노씨는 2시간이나 전화기를 붙잡고 함께 울면서 "살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위장 결혼을 하면 거액을 주겠다는 브로커의 제안에 고민하던 김씨가 노씨의 따끔한 조언에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김씨는 "언니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안 된다"고 했다.

노씨는 5년간 김씨와 거의 매일 연락했다. '구두쇠' 김씨가 외식 한 번 안 하는 걸 알고 만날 때마다 맛있는 것을 사주고, 따로 몇만원씩 쥐여주기도 했다. 김씨가 한번은 '큰맘 먹고' 샴푸 세트를 사 들고 찾아가자 노씨는 "언니가 주는 건 당연하니, 앞으로 이런 건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김씨는 최근 한 부모 가정의 여섯 살 아이에게 매달 2만원씩 기부하기 시작했다. 노씨에게 직접 보답하는 대신,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어 갚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노씨가 "정말 기특하다"고 칭찬하자 김씨는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언니처럼은 못 한다"고 했다. 김씨가 "언젠가 언니에게 제대로 신세 갚고 싶다"고 하자 노씨는 "딸과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게 내가 바라는 일"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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