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의 기본은 상대를 모두 알아야 균형을 찾는다는 것
北·日을 모르면 美·中도 알 수 없고 결국 자신조차 모른다

선우정 국제부장
선우정 국제부장
'내시 균형(均衡)'을 고안한 천재 수학자 존 내시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숨졌다. 영화배우 러셀 크로는 "아름다운 지성(知性)이 떠나갔다"며 애도했다고 한다. 존 내시의 정신분열증 극복 과정은 지난 2002년 '뷰티풀 마인드'란 영화로 공개됐다. 이 영화에서 존 내시 역을 맡은 배우가 러셀 크로다. 그래서 그런 고별사가 나왔겠지만 사실 존 내시가 확립한 게임이론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추하다는 게 아니다. 미추(美醜)·선악(善惡)과 같은 감정 판단을 배제하고 상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지점에서 게임이론은 출발한다. 그렇게 상대의 전략을 알고 자신의 전략을 알면 아무리 어려운 게임이라도 해법이 생긴다는 게 이론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게임은 스포츠·경제·정치·외교를 포함하는 모든 분야의 경쟁과 조정 과정을 말한다.

여러 게임에서 '내시 균형'을 찾다 보면 종종 감탄한다. 분노하지 않고 상대를 객관적으로 대함으로써 약자(弱者)가 승자(勝者)가 되는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큰 돼지에게 먹이를 빼앗기던 작은 돼지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큰 돼지보다 더 많은 먹이를 차지하는 전략 모델이 대표적이다. 큰 돼지 입장에서는 '돼지의 딜레마', 작은 돼지 입장에서는 '합리적 돼지' 모델이라고도 한다.

물론 학문을 위해 극단적으로 설정한 모델이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게임에 감탄하는 건 이론에 담긴 철학 때문이 아닐까 한다. 위축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대처하면 약자도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것, 힘만 믿고 상대를 무시하면 강자도 약자에게 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몇천 년 역사를 통해 터득한 이런 경구(警句)를 몇 개의 숫자로 증명하는 작업을 따라 하면서 존 내시 같은 천재들의 두뇌를 간접 경험하는 것도 게임이론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존 내시를 비롯한 게임이론 연구자들이 대거 노벨상을 받은 것도 차가운 이론의 밑동에 실은 깊고 따뜻한 교훈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지성'이란 러셀 크로의 표현은 타당한 듯하다.

게임이론은 '모든 일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直視)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내시 균형'을 찾을 때 상대의 전략을 먼저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를 배려하자는 게 아니다. 상대의 전략을 알고 전략을 수립해야 내가 위태롭지 않다는 것[知彼知己百戰不殆]이다. 이를 '전략적 사고'라고 한다. 이런 사고로 게임을 하다 보면 '약자의 승전법'처럼 '길게 볼수록 이익이 크다'(포크 정리), '관계를 끊으면 이익도 끊긴다'(보복 전략), '강한 무기는 감출수록 좋다'(혼합 전략) 등 당위적 교훈이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전략적 사고 대신 감정적 행동으로 대응하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것도 이론을 통해 깨닫는다.

우리는 매일 게임을 한다. 연인은 '밀당'하고, 상인은 흥정하고, 기업은 경쟁하고, 정당은 정쟁(政爭)한다. 결과에 따라 개인은 웃고 운다. 기업은 흥망한다. 정당은 부침(浮沈)한다. 그때마다 법석이지만 길게 보면 반복되는 순환이다. 하지만 실패가 우리 전체의 미래에 치명상을 안기는 분야가 있다. 외교다. 열강(列强) 시대 이후 한국 외교는 실로 복잡한 고난도(高難度) 게임으로 전개돼 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한국 외교는 국민의 생존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국민의 관심에선 가장 먼 지점에 위치한다. 상대와 변수가 많은 만큼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응용은 복잡해도 원리는 단순한 게 게임이론의 백미(白眉)라고 한다. 존 내시가 생전에 정립한 균형 원리, '서로 가장 좋은 전략의 접점'(내시 균형)에 우리가 서 있는가를 모색하는 일은 단순하다. '모든 게임엔 균형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존 내시의 이론은 이런 질문도 우리에게 제기한다. '한국 외교는 북한과의 게임에선 어떤 균형을 모색하고 있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질문은 결국 이곳에 귀착할 것이다. '한국 외교는 모든 상대를 알고 있나?'

게임이론의 기본은 모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다. 한국의 동북아 외교는 미국과 중국에다 북한과 일본까지 얽혀 있는 스펙터클한 게임이다. 북한을 모르면 중국을 모르고 일본을 모르면 미국을 모른다. 결국 자신의 좌표를 상실하고 전체 균형이 무너진다. 균형이 무너졌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우리 역사는 아프게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상대가 악마라도 다가가는 것이 전략적 사고다. 천재 수학자 존 내시가 살아있다면 지금 한국에 그렇게 충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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