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에 맞는 외국인·교포만 入北 허용해 선전에 동원
이산가족 상봉·대화는 거부

황대진 정치부 기자
황대진 정치부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이 불발된 지난 21일 외국인 여성운동가와 재미교포 등 30여명으로 구성된 '위민크로스디엠지(Women Cross DMZ·WCD)' 대표단이 평양 시내를 누볐다. 노동신문은 이들이 김일성 생가를 방문, "김 주석의 혁명적 생애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메리어드 맥과이어·북아일랜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수한 초가집에서 탄생하시어 한평생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셨다"(안은희·재미교포)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WCD 측은 남한에 들어온 후 노동신문의 허위 보도라고 주장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이들이 김일성을 찬양한 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WCD는 방북 전 미국 뉴욕 기자회견에서 '이산가족 상봉 및 평화협정 체결 촉구'가 행사 목적이라고 밝혔다. 북은 이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한다'며 대대적으로 환영했고, '5·24조치' 5주년인 24일 DMZ를 통과하도록 했다.

북은 5·24조치가 동족(同族) 간 만남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도 이를 풀기 전에는 불가하다고 선언했다. WCD가 5·24에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것 자체가 북의 이 같은 일방적 주장에 동조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적어도 우리 정부에 '해제'를 압박하려는 북의 의도에 이용당한 셈이다.

정작 북한은 올 들어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모든 남북 간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김정은은 러시아 방문을 일방 취소하고 반 총장을 내치는 등 스스로 쇄국(鎖國)의 길로 가고 있다. 그러면서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골라 들여 체제 선전에 활용한다. 이산가족 단체인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이상철 위원장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입만 열면 민족과 인륜을 얘기하는 북한이 외국인과 종북(從北) 교포의 방북을 허용하면서 고령(高齡) 이산가족의 성묘 방북조차 허용치 않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5·24조치 해제를 전제로 남북 간 대화를 제안한 상태다. 북이 진정 이 조치의 해제를 원한다면 동족에 대한 빗장부터 풀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도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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