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성공단을 방문하려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계획이 북한의 막판 변덕으로 무산됐다. 반 총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오늘 오전 북측으로부터 방북(訪北) 허가를 통보받았다"며 21일 방문 일정을 공개했다. 그러나 북은 하루 만에 방북 불허(不許)로 입장을 뒤집었다. 반 총장은 20일 "북측이 방북 허가 철회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세계 최고 국제기구인 유엔의 수장(首長)이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국적과 이념, 인종, 정파를 떠나 자신이 필요한 세계 각지를 방문해 '평화의 메신저 내지는 중재자' 역할을 해 왔다. 북은 그런 유엔 대표의 방북을 하루 앞두고 방문 자체를 취소해 버렸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외교 무례(無禮)다.

사실 북이 반 총장의 방북을 허용한 것 자체가 이례적 조치였다. 북은 지금껏 반 총장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채 유엔 사무총장이라고 불렀고, 대북 제재 결의와 인권 문제 등을 주도해 온 유엔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들어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을 비롯한 잇단 포 사격, 군부 2인자 공개 처형, 대남 비방 등을 강화해왔다. 당분간 대화보다는 도발적 언동에 초점을 맞춘 듯한 흐름이다.

무엇보다 북한 내부 통치가 정상 작동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북이 원래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고, 김정일 시절에도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광인(狂人)처럼 구는 것을 바깥세상에 대한 협박 수단으로 삼아왔다. 그랬다 해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처럼 러시아에 가겠다고 약속했다가 갑자기 취소하고, 고모부와 심복들을 기관총으로 공개 처형하는 일을 마구 저지르지는 않았다. 북한 내부의 혼란과 불안, 갈등은 밖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 있다. 북은 이런 내부 불만·불안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서 대남 기습 도발에 나설 수 있는 만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북이 반 총장의 방북마저 취소시켰다고 해서 대북 대화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그럴수록 북에 대화의 장으로 나서도록 설득·압박하는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북에 도발에 따른 대가와, 대화를 선택할 때 얻게 될 이득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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