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식 사회변혁論 고집… 486+親盧 세력이 黨 장악해
국민 마음 잃은 새정치연합, 反전체주의 이념·哲學 없어
北 人權 방기하는 새누리당, 共生 끊고 정계 개편 길 가야

류근일 언론인
류근일 언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60년 한국 야당사(史)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는 외부에서 온 게 아니라 내부에서 생긴 것이다. 옛날의 야당 위기와 오늘의 야당 위기가 다른 점이다.

1950년대 야당인 민주당은 자유당 정권의 혹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 수난기(受難期)는 그들의 전성기(全盛期)이기도 했다. 국민의 감동과 연민을 샀던 까닭이다. 신익희·조병옥 두 야당 대통령 후보가 급서(急逝)했을 때 국민이 얼마나 비통해했었나? 그러나 오늘의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때의 야당과는 정반대의 처지에 있다. 그들은 지금 여당과 더불어 한 시대의 기득권을 공유하는 점에서 황금기(期)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반면에 그들은 재·보선에서 광주·성남·관악을 모조리 잃을 정도로 형편없이 추락했다. 왜 이렇게 됐나?

답은 자명하다. 옛날의 민주당은 국민 다수의 마음을 대변했기 때문에 폭넓은 지지를 받았고, 오늘의 새정치민주연합은 소수의 옹고집 탓에 야당의 텃밭에서조차 버림받았다. 국민 다수의 마음이란 '자유민주주의 테두리 안의 진취적 여망'일 터이고, 소수의 옹고집이란 '1980년대식 사회변혁론(論)'일 것이다. 1980년대에 극단적 체제혁명을 부르짖던 386 전대협 세대가 자유민주주의 야당을 타고 앉아 편향된 이념지대로 몰고 간 결과다. 호남 민심에 투영된 보편적 민심이 "이건 아닌데?"라며 레드카드를 들이민 것은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이들과 생각이 다른 인사들이 물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전(實戰)에서 '486+친노(親盧)'에게 번번이 밀렸다. 비노(非盧)는 똘똘 뭉치는 결속력, 남의 당(黨)에 들어가 그 머리·허리·팔다리를 먹어가는 조직력, 음모와 꼼수, 수(數)싸움, 기(氣)싸움에서 친노를 늘 견뎌내지 못했다. 손학규, 김한길·안철수 체제도 그래서 무너졌다. 한광옥·김경재 같은 전통 야당 주류는 떠났다. 권노갑·정대철·한화갑 같은 원로들이 애를 쓰고 있지만 친노는 막무가내다. '당대표 문재인' '대권 주자 문재인' 역시 '486+친노'에 얹혀 있는 존재라고 하면 결례일까?

이런 시대착오적 이념 집단이 힘을 쓰게 된 데는 새누리당 같은 '웰빙 보수'의 철학의 빈곤도 한몫했다. 이들은 "이념의 시대는 갔다"는 것을 잘못 풀이했다. "공산주의가 갔으니 그에 맞선 이념도 가야 한다"고 오도(誤導)한 것이다. 이것은 웰빙 보수의 커다란 착오였다. 그래서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는 자유체제를 지키기 위해선 그 둘이 다 없는 전체주의 체제와 싸워야 한다"는 당위(當爲)를 폐기해 버렸다.

불행히도 한반도에선 '수용소 체제냐 반(反)수용소 체제냐?'의 가치 싸움, 이념 충돌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유엔 등 국제기구들이 최근 들어 부쩍 북한 인권 참상에 주목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한국의 '웰빙 보수'가 이 중요한 초점을 흐려버렸기 때문에 그 몽롱함을 온상으로 386 전체주의 잔재들이 저처럼 일방적으로 기승해 온 것이다.

많은 사람은 박근혜 정부가 이런 가치의 혼돈을 헤치고 명징(明澄)한 철학적 분별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에너지를 불붙이는 리더십보다는 궁정 관료에게 지시를 내리고 서면(書面)으로 보고하라는 식의 폐쇄적인 스타일로 흘렀다. 이런 방식은 집권 3년 만에 한계에 부딪혔다. 이로 인한 리더십의 공백을 지금 국회선진화법이란 기괴한 '적대적 공생(共生)' 체제가 차지하고 있다. 이 체제는 구닥다리 이념 집단에 발목 잡힌 야당과 출세 이외엔 딱히 철학이랄 게 없는 여당 사이의 비(非)생산적인 정계다. 이 정계에 대한 민심의 일단을 조선닷컴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5·18 전야제에 참석했던 여야 대표 모두가 시민들로부터 욕설과 야유를 받았다." 이 일각엔 야당발(發) 정계 개편의 정서도 실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 하나? 지금의 정계가 만들어내는 허위(虛僞)의 이슈를 털고, 북한 핵·미사일이라는 진짜 이슈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웰빙 보수'와 '싸가지 진보'의 동거(同居)는 도전받아야 한다. 야당 합리파가 '486+친노' 패권주의에 '노(no)'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파장(波長)이 '웰빙 여당'에까지 미쳐야 한다. 내년 총선의 공천이 걸려 있어 갈라서고 싶어도 못할 형편이겠지만 그래도 야당과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정계 개편의 큰 그림만은 그려봐야 한다. 창출(創出)하는 게 정치인의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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