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한·미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며 두 나라는 빛이 샐 틈도 없을 만큼 단합돼 있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이번 방한(訪韓) 내내 작심한 듯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다녔다. 지난달 아베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 이후 한국 내에서 제기된 미·일 신밀월(新蜜月) 시대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제스처로 보인다. 미·일 동맹이 과거와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강화됐다고 해도 한·미 동맹의 위상이 흔들리거나 약화될 것이라고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케리 장관은 북한 핵·미사일, 한·일 과거사 문제 등에서는 진전되거나 새로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케리 장관은 "북한은 우리에게 가장 큰 안보 우려 사항"이라면서도 "국제사회는 북한의 여러 악행(惡行)에 대해 계속 초점을 맞춰야 하고, 대북 압력을 더욱 가중시켜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북의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에 대해 추가적인 유엔 제재를 추진하겠다는 것 정도가 새로운 입장이라면 입장이다. 문제는 유엔 제재가 지금껏 북의 근본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금 한·미에 필요한 것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서도록 만드는 실질적 방안이다. 대북 압박과 제재 또는 대북 대화와 설득, 또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 모두가 다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오바마 미국 정부는 북핵 해결에 적극 나서기보다는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 전략을 앞세우고 미국은 2선으로 물러나 있는 듯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미국 내에서까지 오바마 정부가 북한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고 그 사이 북의 핵·미사일 위협은 더 커졌다. 이래서는 북한 문제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케리 장관은 한·일 관계에 대해 "한·일 두 나라가 민감한 역사 문제에 대해 자제심을 갖고 대처하면서 계속 대화해 서로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현안들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밝히는 선을 넘지 않았다. 케리 장관의 방한은 미국 정부가 일본을 제쳐놓고 한국 편을 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외교적으로 순진한 발상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 줬다.

우리에게 닥친 북한·일본 문제 같은 외교적 난제를 풀어야 할 제1 당사자는 대한민국이다. 한·미 동맹은 물론 대일(對日) 외교의 새로운 구상과 비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북핵·미사일을 효과적·실질적으로 저지할 중·장기 및 단기 대책을 세우는 것 역시 우리의 몫이다. 다음 달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한국 외교의 힘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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