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3명, 北서 마약 제조]

北공작원 '경호' 속 밀입북… 北에 '기술' 주고 '장소' 받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필로폰 본격적으로 만들어
"조국 배반안해" 충성맹세도

 

필로폰 제조법에 능숙했던 방씨는 1997년 북한 사회문화부와 작전부 공작원들로부터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시설과 원료, 기술을 제공하면 북한이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지인 이모(사망)씨로부터 받았다. 방씨 등은 '기술'을 주고, 북한은 장소를 제공하는 '협업'이 시작된 것이다.

필로폰 1t을 제조해 북측과 반반씩 나눠 갖기로 합의한 일당은 국내와 중국에서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샀다. 이들이 준비한 필로폰 제조 장비는 '중국 단둥―신의주' 간 국제화물열차와 '부산―나진항' 간 화물선을 통해 황해북도에 있는 사리원 연락소에 보내졌다. 사리원 연락소는 남파공작원 파견 기지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1998년 11월 중국과 압록강을 통해 북한으로 몰래 들어갔다. 필로폰 제조의 주원료인 염산에페드린이 북한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은 국내로 돌아왔고, 중국에서 염산에페드린을 구해 2000년 다시 북한으로 갔다. 이들은 작전부 소속 전투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고무보트를 타고 안전하게 압록강을 건넜고, 사리원 연락소까지는 군용 트럭을 타고 갔다. 이들은 2000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필로폰을 만들었다. 우리 정부와 북한이 1차 남북 정상회담(2000년 6월 13~15일)을 하던 무렵이었다고 한다. 같은 해 7월 70㎏의 필로폰을 생산한 이들은 다시 작전부 전투원들의 호송을 받아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한 뒤 약속대로 생산량의 절반인 35㎏의 필로폰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필로폰 행방에 대해 "전달책이 중국 공안에 잡혀 필로폰을 모두 압수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 머무는 동안 이들은 김정일 체제 선전 영화를 봤고, 평양 혁명열사릉 등을 견학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2010년 김정일 생일(2월 16일)을 맞아 북한 공작원의 지시를 받고 "장군님의 정치적 신임을 받았다. 조국(북한을 의미)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충성맹세문을 작성해 제출했다. 김씨는 또 2011년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당의 높은 분에게 선물해야 하니 체지방 측정기와 안마기를 각각 2대씩 구입해 베이징으로 가져오라"는 '뇌물 구매' 지시를 받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이번 수사 과정에선 북한이 이중 삼중으로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2010년 10월 숙환으로 사망)를 암살하려고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앞서 2009년 12월과 2010년 8월에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3명이 황 전 비서를 암살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뒤 국내에 입국했다 붙잡혔다.

이번에 적발된 일당 역시 2009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10회에 걸쳐 황 전 비서와 북한 인권운동가인 독일인 의사에 대한 암살 지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김씨는 이를 위한 공작금으로 5000여만원을 받았으며, 황 전 비서가 거주하던 안전가옥 등을 답사했다. 김씨는 국내 조직 폭력배와 해외에서 '살인 청부 업자'로 활동하는 특수부대 출신자를 '킬러'로 섭외했다. 북한은 황 전 비서 암살 시도에 앞서 김씨가 구한 암살자들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탈북자 출신 한 언론인에 대한 암살 지령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의 계획은 황 전 비서가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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