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책 '경제·核 竝進 정책'은 경제 성과 적고 핵 개발만 가속
北 내부선 先核派 강화되고 한반도 미래 불안감 더 키워
더 큰 개방으로 경제 비중 늘려 핵 압도할 유도 전략 강구해야

조동호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원장
조동호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원장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2012년, 평양에서는 수차례 외교안보전략회의가 열렸을 것이다. 그 자리에선 새로운 지도자 시대의 대외 전략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있었을 것이고, 2013년 3월 발표된 '경제·핵 병진(竝進)정책'은 그 회의의 결과였을 것이다. 이제는 경제에 치중해야 한다는 '선경파(先經派)'와 그래도 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선핵파(先核派)'가 타협한 것이다.

집권 기반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일반 주민의 지지 획득이 필요했던 김정은은 '선경파'의 손을 조금 더 높이 들어주었다. 먹고사는 문제의 개선이야말로 자신이 김일성·김정일의 자손이라서가 아니라 그만한 능력이 있어서 지도자가 된 것임을 입증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칭도 '핵·경제'가 아니라 '경제·핵'으로 쓰도록 했다.

'선경파'는 개방을 주장했다. 경제난 타개를 위해서는 자본이 필수적인데 자본은 외부로부터 올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2013년 5월 '경제개발구법'을 만들었고 실제로 북한 전역을 대상으로 그해 13개, 2014년 6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 외화 획득이 상대적으로 쉬운 관광특구도 설치했다. 2014년 6월 원산·금강산 지역을 국제관광지대로 지정했고, 올해 2월에는 두만강 하구에 중국·러시아와 함께 무비자로 이용하는 '국경 없는 국제관광구'를 만든다는 발표도 했다. 지난 4월 22일에는 백두산 '국제관광특구' 조성을 결정했다. 김정일 시절 북한의 네 귀퉁이에만 소극적으로 특구를 만들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북한 정권 수립 이래 가장 적극적인 개방 움직임이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선핵파'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핵 개발을 계속하면서 수시로 미사일 발사 실험도 했다. 지난주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에도 사용될 수 있는 위성관제지휘소를 시찰했고,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 시험발사를 직접 참관했다. 대남 군사도발 수위 역시 여전하다.

병진정책을 바라보는 우리 정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핵을 머리에 이고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하다. 개방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핵을 버리라는 주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핵을 3대 세습의 손자가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2012년 4월 개정헌법 서문에 핵 보유국임을 명기해 놓았다. 아직 북한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안보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포기할 리도 만무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수년째 열리지도 않고 있다.

대북정책의 딜레마인 셈이다. '경제·핵 병진정책'에서 핵을 보자니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경제를 보자니 핵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북한의 '선경파' 역시 당혹스러울 것이다. 과감한 개방에는 착수했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기 때문이다. 조만간 평양에서는 성과 평가가 진행될 것이고, '선핵파'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기껏 전국을 개방하고선 얻은 것이 무엇이냐며, 역시 '핵 유일 정책'이 조선이 나아갈 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일반 주민의 지지 못지않게 권력층의 충성이 필요한 김정은은 이번엔 '선핵파'의 편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런들 북한 내부의 문제일 뿐이라고 무관심할 수는 없다. 병진정책에 대한 우리의 외면이 오히려 핵 개발을 부추기고 한반도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를 내세운 병진정책은 우리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책보다는 훨씬 긍정적이다. 개방의 작은 성공이 더 큰 개방으로 연결되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더 부합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병진정책에서 경제의 비중이 핵을 압도하도록 유도하는 우회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