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회 조선경제i 대표
이광회 조선경제i 대표
한국인들은 중국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허베이(河北)성 산해관(山海關)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인 랴오닝(遼寧)성 호산(虎山)산성으로 슬그머니 연장했다. 단둥(丹東)과 지안(集安) 사이에 있는 이곳에서 양국은 '이뿌콰'(一步跨·한발 훌쩍 뛰어 건넌다)라는 시냇물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맞댄다.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발해만에서 한반도 접경지이자 만주 벌판까지 확장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일제 강점기의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를 '조선족 중국인'이라고 얘기한다. 작년 10월 말 지린(吉林)성 화룽(和龍)현 밍둥(明東)촌의 윤동주 생가를 찾았을 때 그의 대표작인 '서시(序詩)' 시비(詩碑)에 새겨진 '중국 조선족 애국주의 시인 윤동주(1917~ 1945)'라는 표지를 보고 기막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제로 지린·헤이룽장(黑龍江)·랴오닝 등 옛 간도 만주 벌판의 학교에서는 윤동주를 '중국인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 가르친다. 중국은 옛 고구려 수도 국내성이었던 지안의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사신도(四神圖), 무용총(舞踊塚)을 10여 년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중국 역사의 일부로 바꿔놓았다.

역사와 민족의 확장은 경제 영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작년부터 신(新)실크로드, 즉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일대(一帶)'는 중국과 이탈리아 간 육상 실크로드, '일로(一路)'는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 케냐까지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중국의 꿈(中國夢)'을 강조해 온 시 주석이 2013년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 방문 때 내놓은 국가 목표로 세부 계획은 60여 개국, 44억명 경제권역에 524억달러(약 58조원)를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대중화(大中華) 사상과 중국·중국인이 중심에 자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정부가 500억달러 기금을 내놓으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하겠다는 것도 중국 주도의 경제권역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시 주석의 신실크로드·유라시아 시장 공략이 아니라 허둥대고 선언에 그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선언은 1년여가 지난 지금 울림조차 사라진 것 같다. 작년엔 세월호 사태에, 올해는 각종 개혁안과 성완종 사태에 파묻혀 힘을 못 받고 있다. 남북관계는 진척이 없고, 나진·선봉, 훈춘 등 두만강 접경지 개발 역시 어정쩡한 상태다.

유라시아 시장은 우리에게 소중한 영역이다. 제조업 성장의 한계, 내수 시장 침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고 급속한 노령화와 조기 퇴직, 청년 실업 해소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통일 한반도와 경제 재도약의 기틀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는 중국의 신실크로드, 러시아의 신동방 정책 사이에서 주도적으로 실리(實利)를 챙길 수 있는 지정학적 입지, 자본과 기술·인력 등 경제적 자산도 갖고 있다.

이제라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계획의 재정비와 실천 전략 마련을 통해 중국 정부의 들러리가 아닌 우리만의 주도권으로 새 시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유라시아 시장이 통일 한반도의 미래 시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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