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道 右클릭' 표방하지만 당내 주류인 親盧 장악도 과격파 억누르지도 못 해
'10년 주기' 재현하려면 타협과 從北 몰아내기로 불안한 국민 신망 얻어야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대한민국에서 선거다운 선거가 치러진 1987년 이후 정권의 향배(向背)에서 흥미로운 현상이랄까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보수·우파인 노태우·김영삼 정권이 10년, 좌파·진보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10년, 그리고 다시 보수파인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10년을 가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의회 정치의 역사가 일천한 나라에서 이미 오래전 정치 선진화를 이룩한 구미(歐美)의 나라들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좌·우 순환의 집권 행태를 보이는 것은 자못 놀라운 일이다.

이런 순환 주기(?)에 어떤 내재적 의미가 있다면 다음 정권은 진보·좌파로 분류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차례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른바 친노(親盧)가 장악하고 있는 새민련이 과연 보수에 식상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순환의 맥(脈)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가 없다. 핵심은 국민의 다수가 경제·외교·국방·내치(內治) 면에서 내홍을 겪고 있는 이 시국에 정권을 야당에 맡기는 선택을 할 것인가다.

적어도 새민련의 문재인 대표는 그런 사정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하는 것을 보고 다음 차례는 '우리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변신을 시도하는 듯 보인다. 민생과 경제를 내걸고 중도 쪽으로 우(右)클릭하는 그의 순발력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정권을 맡겨도 불안하지 않게 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하지만 그가 명실공히 당 주류인 친노 강경 세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증좌는 아직 없다. 지금 친노는 악다구니는 있어 보여도 나라를 온전하게 운영할 지혜와 절도(節度)와 고민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한 대체 세력을 자처한다면 지난 주말 도심을 마비시키다시피 한 난폭 데모를 앞장서서 막고 이 사회의 불만과 불평을 의회로 수렴하는 전략의 전환을 보였어야 한다. 세월호·공무원·노동자의 배후에서 그들이 외치는 '정권 타도'에서 행여 부스러기나 주우려는 생각이라면 집권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지금은 4·19나 6·3이나 광주민주화운동 때처럼 나라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 아니다. 많은 국민이 구국(救國)의 심정으로 거리로 뛰쳐나오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야당이나 반(反)정부 세력의 과격화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보수적인 사람도 사안에 따라 진보적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진보 성향의 사람도 보수적 행태를 보일 수 있다. 획일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이제 세상의 민심은 예전처럼 6대4 또는 7대3으로 갈리지 않는다. 0.1의 차이로 판가름 나는 정치 마당에서 미세한 변화는 곧 정권의 방향을 좌우한다. 지금 거리에서, 또 국회에서 벌어지는 '퇴진'과 '하야'와 '타도'는 국민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할 뿐이다. 그것을 모른다면 대체 세력의 자격이 없다.

그래서 새민련이 차기 집권 가능성을 입증해 보이려면 무엇보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국회 내에서 의회주의에 입각한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한다. 서구 민주정치에서는 타협을 가리켜 '중간에서 만난다(meet halfway)'라고 표현한다. 견해가 다르면 반(半)씩 양보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다 먹어야 한다'거나 '절대로 안 된다'는 태도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정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당이다. 지금 주면 언젠가는 되돌려 받는다는 자세로 가는 것이 국민을 덜 불안하게 하는 것이고 집권하는 길이다. 과거에는 대여(對與) 협조 문제를 놓고 걸핏하면 '사쿠라' 논쟁이 있어왔다. 이제 우리 정치에서 '반대=선명'은 사라졌다.

새민련이 진보적 색채의 정당이니만큼 대(對)북한 문제에서 새누리당의 노선과 같을 수는 없다. 특히 새민련의 정치적 대부(代父)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두 남북 정상회담을 했던 정당인 만큼 '북한과 더불어 가는' 정당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안에서 북한을 무조건 옹호하고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세포적인 대북관으로는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다시 말해 '친북(親北)'까지는 견해가 엇갈려도 그 수준을 넘는 '종북(從北)'의 요소는 결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빨리 파악할수록 집권의 길은 열릴 것이다.

한 나라가 잘되려면 그 나라가 가진 모든 지혜와 능력이 총동원돼야 한다. 한쪽의 정권은 한쪽의 지혜와 능력을 동원할 뿐이고, 그 정권이 장기(長期)로 가면 다른 한쪽의 두뇌와 능력과 지혜는 사장(死藏)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국가로서도 낭비고 손해다. 정권이 바뀌는 것은 인재들이 골고루 숨쉬게 하는 제도다. 10년의 보수·우파 정치에 식상한 국민이 어디 믿을 곳 없나 하며 주변을 살피는데 야당이 데모나 하고 사사건건 반대나 해서 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으면 거기서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때'는 온 것 같은데 그 '때'를 휘어잡을 철학과 실천이 보이지 않는 것이 새민련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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