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박정훈기자】 전직 일본 신문 기자가 현대의 금강산 개발사업에 막후 밀사 역할을 맡았다고 스스로 공개했다.

아사히(조일) 신문 서울 특파원을 지낸 고바야시 게이지(소림경이·65·사진) 규슈코쿠사이(구주국제)대학 교수는 10일 발매된 월간지 중앙공론 3월호에 기고한 수기에서 “남-북, 일-북 간에는 새 파이프가 생기고 있는 만큼 내 역할은 끝났다”며 그동안 남북의 중개역을 맡은 과정을 소개했다. 고바야시 교수는 김영삼(김영삼) 전 대통령 등 한국 정-재계 인사와 두터운 교분을 맺어왔으며, 북한에도 여러 차례 들른 대표적인 민간인 대북 창구였다.

그는 수기에서 “현대측의 요청은 97년 가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경남중학 동기인 박정두(박정두) 현대증권 고문을 통해서 들어왔다”며 “며칠동안 고민하다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현대측으로부터 교섭 전권을 넘긴다는 이익치(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사장 명의의 위임장을 받은 그는 금강산 개발계획과 함께 ‘금강산 개발은 현대가 적임’이라는 편지를 김용순(김용순)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에게 인편으로 보냈다. 그 뒤 북한과 무역을 하는 요시다 다케시(길전맹) 신일본산업 사장을 통해 대화를 진행시켰다고 한다.

수십 차례 교섭 끝에 98년 2월15일 베이징(북경)에서 정몽헌(정몽헌) 회장과 송호경(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자신이 참가한 첫 직접 협의가 열렸다. 북측은 당시 금강산 개발 조건으로 쌀 10만t 지원과 한우(한우) 수송용 트럭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또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당시 “북한이 취임 연설을 주목하고 있으니 직접적인 비판은 가능한 한 피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주문, 이런 내용이 반영됐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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