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China own the problem(중국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라)."

임민혁 정치부 기자
임민혁 정치부 기자
북핵(北核) 협상에 정통한 미국의 한 인사는 최근 미국의 북핵 정책을 이 같은 문장으로 설명했다. 과거에는 미국이 주도권을 틀어쥐고 중국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아예 중국에 "이거 너희 문제니 네가 알아서 풀라"며 운전대를 통째로 넘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현재 미국에는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전략은 물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북핵 문제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최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협상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을 불러 한 인터뷰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오바마는 미국이 불량 국가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설명했다.

"이란·쿠바·미얀마 등 불량 국가에 '개입(engagement)'을 적극적으로 한다. 그들이 우리가 내민 손을 잡고 따라오면 최선이다. 만약 그들이 손을 뿌리치고 악행(惡行)을 계속한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여전히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장 우리에게 큰 위협은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손 한 번 내밀어 그들을 테스트해보는 시도를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바마는 이란·쿠바 전에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북한과 수차례의 물밑 협상을 통해 2012년 '2·29 합의'를 도출했다.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장거리미사일 유예 대가로 경제 지원을 하기로 한 조치였다. 하지만 북한은 보름 만에 '인공위성으로 포장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계획'으로 합의를 파기했다. 아무리 미국이 '실패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단시간 내에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미국이 북핵 문제에 관심을 끊다시피 하며 중국의 등을 떠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미국은 "역시 북한은 믿을 게 못 된다"며 골치만 아픈 북핵에서 눈을 돌려 손 내밀 새로운 곳을 모색했다. 오바마의 언급처럼 북한이 당장 미국의 핵심 안보 이익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한국 입장이 미국과 같을 수는 없다. 북핵 문제를 뒷전으로 밀어놓는 '사치'는 한 해 국방 예산 6000억달러(약 656조원)를 쓰는 대국(大國)만이 누릴 수 있다. 핵·미사일을 코앞에 두고 수시로 위협받는 우리에게 이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단 하나의 최우선 과제다.

오바마는 프리드먼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핵으로부터 직접 위협받는) 이스라엘의 입장은 미국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만약 이스라엘이 공격을 당한다면 미국이 항상 뒤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북핵 목표는 '공격당했을 때 도움받는 것'이 아니라 '공격당할 여지를 없애는 것'에 맞춰져 있다. 북핵 문제에서 더 이상 미국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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