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해야 하지만 위협 느끼는 중국이 어떤 카드 빼들지 몰라
중국 입장 이해하고 중국인 마음 얻는 것도 강력한 안보·통일 전략

양상훈 논설주간
양상훈 논설주간
윤병세 외교장관이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당당하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지금이 윤 장관이 자랑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가 '고난도 외교 사안의 고차방정식을 1·2차원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한 것엔 이해가 가는 점이 있다. 국가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닥칠 수 있는 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반의 비평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북(北)의 핵미사일에 직면해 있는 우리 입장에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아니라 무엇이라도 방어에 도움이 된다면 들여와야 한다. 핵은 핵으로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 자명한 진리처럼 여겨져 왔으나 우리는 핵을 가질 수 없다. 일본 정도의 '핵 준비국'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로지 미국의 핵 보복 능력과 미사일 방어 기술에 기초한 확장 억제만이 가능하다. 사드는 확장 억제의 주요 구성 부분인데 그것마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사드 배치가 우리 안보에 득(得)이 아닌 실(失)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잘 살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중국에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이란 선물을 주고 사드를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중국서 일했던 한 분은 "그렇다면 중국은 '한국이 AIIB에 안 들어와도 좋으니 사드 배치하지 말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와 안보는 시장에서처럼 교환되는 건 아니다.

미국은 북의 위협을 막을 수 있지만 중국은 북 위협 자체를 없앨 수 있는 나라다. 중국이 북 체제를 희생시켜서라도 북핵을 없애야겠다고 결심한다면 사드 포대 100개보다 더 위력적이다. 지금 중국은 반대로 북핵 없애자고 북 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방어력을 강화하는 것 못지않게 중국의 이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중국이 왜 북한을 필요로 하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중국에 북한이 필요한 것은 미국 세력과 국경을 바로 맞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북의 핵 불장난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중국에 "사드가 싫으면 북핵을 없애라"고 말해보았자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북핵을 걱정하듯이 중국도 미국과 사드 레이더를 두려워한다.

중국은 덩치 큰 청소년 같은 나라다. 아직 강대국의 품격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 나라가 우리보다 더 많은 카드를 갖고 있다. 중국은 사드 한국 배치를 막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들의 압박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15년 전처럼 한국 휴대폰 전면 수입 금지 같은 폭력적 반발로 나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한국이 사드로 잃는 게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려 나선다면 북·중 관계의 개선, 특히 군사 관계의 진전에서부터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 대한 압박까지 많은 카드 중에 무엇을 빼들지 알 수 없다. 그 경우에 북 미사일을 다 막지도 못하는 사드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잃었다는 논란이 우리 국내에서부터 벌어질 수 있다.

중국이 뭐라든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가야 한다. 다만 중국이 그 길 위에 드러눕지는 않게 해야 한다. 만약 중국 사람들 사이에 한국이 미국의 대북(對北) 아닌 대중(對中) 군사 전략까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믿음, 한국이 미·일과 한편이 돼 중국을 포위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확신, 미·중의 평화 공존을 세계에서 제일 바라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인식, 통일 한국이 중국 안보에 실(失)이 아니라 득(得)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다면 사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이런 인식을 심는 것은 수백억달러어치의 무기를 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안보·통일 전략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새우 신세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은 계속되겠지만 큰 방향은 평화 공존으로 가고 있다. 프랑스보다 더 많이 수출하는 나라인 한국을 구한말처럼 새우에 비유하는 것도 당치 않다. 단지 우리는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삼되 그 너머도 볼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의 신의를 굳건히 하되 중요한 이웃을 잃는 우(愚)도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모색과 고민은 세계 모든 나라가 하고 있는 것으로 줄타기나 눈치 보기가 아니다.

사드 레이더가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약속해도 한·중 간에 신뢰가 부족하다. 이 정도 신뢰로 한·중 간 통일 대화가 가능할까.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의 입장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방법은 나온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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