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급변에 따른 대비는 정부의 필수적인 안보 책무
'흡수통일' 무조건 반대는 통일 이니셔티브 포기 불러…
통일 담론 활성화 바탕으로 北 변화 주시 통합 준비해야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통일은 한민족의 숙원이자 지상과제다. 통일은 분단의 아픔과 비극을 해소하고 남북공동체 형성의 길을 열 것이다. 통일된 한국은 동북아에서 강력하고 번영된 선진 국가로 부상하면서 역내(域內) 안정과 평화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이렇듯 통일의 당위성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어떤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추구할 것인가에는 백가쟁명식 주장이 난무한다. 북한 주도의 무력 통일 및 연방제 통일로부터 한국 주도의 평화적 합의 통일, 북한 급변 사태로 인한 흡수통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통일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이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우리 사회가 통일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통일준비위원회의 '흡수통일 준비' 여부가 논쟁을 한층 고조시켰다. '흡수통일 반대' 주장에는 우리가 통일 이니셔티브를 포기하고 반드시 북한과의 합의를 거쳐 통일해야 한다는 맹목적 전제가 엿보인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북한 붕괴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무너질 경우의 통일 준비에도 반대하는 뉘앙스다. 그러나 북한 급변에 따른 통일 대비는 정부가 시행해야 할 필수적인 안보·통일 책무다. 이를 회피하면 직무 유기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남북 합의 통일이 이론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북한의 변치 않는 군사적 적대와 수령(首領)·주체 중심 통일전략을 감안할 때 실현 가능성이 문제다. 한반도 안보 현실과 북한 정세를 외면한 통일 논의는 사상누각과 같다. 독일 통일이 주는 교훈은 '접촉을 통한 변화' 끝에 획득된 열매로서의 통합이다. 동·서독은 상대를 인정하고 교류를 확대해 통일을 달성했지만 그 이면에는 수십년간 수백만명의 인적 교류와 자유로운 접촉의 밑거름이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과연 지금 남북한 주민 간에 의미 있는 접촉과 대화가 가능한가? 한반도에 독일 통일 사례를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 남북경협은 자칫 실질적 인적 교류 없는 대북 지원으로 변질돼 세습 독재 강화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1994년 정립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합의 통일을 목표로 '화해협력→남북연합→국가통일' 3단계 로드맵을 상정했지만 20년이 넘도록 1단계에도 진입 못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 후 남북관계는 최악에 이르렀다. 사과 한마디 없이 적반하장식 말 폭탄으로 일관하는 북한의 태도 때문에 해빙(解氷)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론'으로 통일 담론을 활성화한 것은 업적이다. 그러나 국가 이념과 통일 원칙에 합당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통일 방안을 보완하는 일이 시급하다. 서독이 통일 과정에서 자유민주체제의 기본 이념을 포기한 일은 없었다. 동독 주민들은 자유투표를 통해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서독의 자유체제로 흡수통일되는 길을 선택했다.

북한은 무력통일과 별도로 비(非)군사적 통일 전략을 추구한다. 북한과 남한 종북(從北) 세력의 합작에 의한 '연방제' 통일 음모가 그것이다. 남한에 용공(容共) 정부를 세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후 연방정부를 구성해 북한 주도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이 다른 체제 간 연방제는 불가능하다. 이를 잘 아는 북한이 연방제를 명시한 6·15선언을 앞세워 남한을 교란하는 것은 평화적 적화(赤化) 음모다.

진정한 남북 통합은 정상적인 자유체제가 중심이 돼 세습 독재를 변화시킬 때 가능하다. 북한 눈치를 보느라 통일의 정도(正道)를 외면했다간 우리 내부로부터 자기 부정의 위기에 휘말릴 수 있다. 아울러 북한 내부에서 진행 중인 '자본주의 실험'이 어디로 향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긴 호흡으로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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