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前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 前 한나라당 대표
필자는 수년 전 우리 국회에서 "일본은 우리와 외교를 공작적으로 하고 있으며, 중국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UAE·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중동 여러 나라는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 도입을 결정했거나 검토 중이다. 이란의 핵 개발에 대비해서다.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은 북한보다 2~3년 뒤처져 있을 뿐 아니라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부인하고 있다. 반면 핵보유국임을 헌법 전문에 공표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오히려 중국의 반대를 의식해서 사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중국이 사드에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냉전의 잔재'라는 중국의 시각으로 한·미 동맹을 흔들어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일본이 중국 못지않게 한·미 동맹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년 7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반도 유사시 주일 미군기지에서 미국 해병대가 출동하려면 일본 정부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안보 전문가들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일본 내 기지를 사용하는 것은 도쿄와 서울을 맞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정부가 주일 미군 기지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우리의 등에 칼을 꽂는 일이다. 일본은 우리 정부와 협의 없이 북한과 수시로 일련의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아베 총리의 발언이 북한에 어떠한 메시지로 전달되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말에는 100억달러 규모의 한·일 통화 스와프 협정이 종료됐다. 우리가 1997년 외환 위기 때 IMF에서 195억달러 구제금융을 받고 국가 부도 사태를 면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초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서 한국에 대해 "우리나라(일본)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기존 표현을 삭제했는데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한·미·일 삼국 관계의 기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이다. 한국을 이 가치동맹에서 제외해서 이제 한국은 중국 편이라고 워싱턴에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그렇게 새로운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한 고위 인사가 말했듯이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다.

이제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중국도, 일본도 흔들고 있는 한·미 동맹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미국도 분명 아베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지만 역사 문제와 안보 문제를 분리하고 있다. 아무리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 잘못돼 있다 하더라도 핵무장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의 부상(浮上)에 대비하기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일본은 나카소네 전 총리가 말했듯이 '미국의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을 자처하고 있다. 일본에 더 이상 노마크 찬스를 허용해서는 곤란하다. 안보 문제와 역사 문제를 분리하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우선순위라도 조정해야 한다.

외교는 상대방을 사랑해서 결혼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외교에서는 '악마(惡魔)와 춤추기'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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