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 저녁 9시 20분쯤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해병 46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하였다. 당시 북한에서는 중앙당 통일전선부 산하인 반제민족민주전선의 이름으로 미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 괴뢰도당들이 북침전쟁도발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하여 스스로 함선을 침몰시키고 공화국에 넘겨씌우는 비열한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고 규탄했다. 조선중앙통신사는 군사논평원의 시사해설발언을 통해 천안함 침몰사건은 남조선 정부가 벌린 자작극이라고 발표했다. 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양형섭 부위원장은 담화문을 발표하여 천안함 사건은 공화국과 전혀 관계없는 날조극이라고 비평했다.

북한에서는 조선중앙TV와 방송을 통하여 국방위원회 합동조사단을 남조선에 파견하여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큰소리쳤다. 북한의 전체 군대와 인민들에게 천안함 사건은 미제와 남조선정부의 철저한 조작극이라며 북한주민들이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들의 북침전쟁도발책동에 경각심을 심으면서 전투동원 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이렇게 천안함 사건이 미국과 남조선정부의 자작극 선전공세로 이어지면서 처음에는 북한 군인들과 주민들도 그렇게 믿었다.
북한에서는 왜 자기 병사들을 죽이면서까지 북침도발 행위를 진행하는지를 분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북한 내에서도 작전에 직접 참가한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특급비밀로 해온 것이다. 2010년 5월 중순 나는 퇴근하다가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박 모라는 사람(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 출신)을 우연히 만났다.

당시 그는 군사칭호 소장을 달고 군 복무 하다 몇 달 전에 뇌혈전으로 제대해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맥주라도 한잔하자며 식당으로 갔다. 맥주를 마시다가 식당 홀에 있는 TV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하여 날조극이라는 보도가 방영되자 “왜 우리는 항상 먼저 도발 당하면서도 대책을 세우지 못하나”하고 그에게 묻자 그는 “알 만한 사람이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말라면서 천안함은 인민무력부 작전국 주도하에 인민군 해군에서 진행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인민무력부에서는 1999년과 2002년 북방한계선(NLL)을 지키기 위해 서해 해상전투에서 북한군이 큰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최고사령부의 지시를 받고 은밀히 준비를 하여 진행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가 근무하고 있을 당시에도 작전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내가 왜 그 즉시 보복조치를 하지 않고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보복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즉시 진행하면 우리가 한 것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알게 되고 테러행위로 규탄할 수 있기 때문에 즉시 단행하지 않고 면밀하게 준비해 우리가 한 것을 모르도록 하기 위해 몇 년 지난 다음 작전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010년 7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친구가 중앙 검찰소에 국가재산 탐오 절취죄에 걸려 구속됐다.

중앙기관에서 부국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2007년부터 직위를 이용하여 많은 국가재산을 지방으로 빼돌려 도급기관 사람들을 통하여 팔고 거액의 돈을 횡령했다가 구속됐다. 평소 악인들과 관계를 맺어온 터라 그를 살리기 위하여 친척들과 친구들이 중앙당과 중앙 검찰소에 로비를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국가 재산을 절취한 것이 밝혀지면서 재판을 받게 됐다.

북한 형법에는 국가재산 10만 원 이상의 물자나 돈을 개인이 절취하였을 경우 범죄로 인정하며 100만 원 이상인 경우 대량 범죄사건으로 10년 이하의 교화형에 처하게 되어 있으며 500만 원 이상부터는 특 대량으로 최하 15년, 무기징역과 최악의 경우 총살형에 하게 돼 있다. 그는 3000만 원 이상의 국가재산을 절취하여 아랫사람들을 통해 팔고 돈을 받았기 때문에 특 대량으로 엄중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친지들의 구명 노력으로도 꺼내지 못했던 그는 이상하게도 2010년 10월 말 뜻밖에도 교양처리로 석방됐다. 하지만 그와 함께 국가재산을 팔아먹은 다른 사람들은 7~10년형을 받고 교화소로 갔다. 그의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어떻게 나오게 됐는가 묻자 그는 사위 덕에 쉽게 나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이 있었는데 딸이 황해남도 과일군에서 보안서에 근무하다가 그곳에 있는 해군군관과 만나 연예를 하다 그에게 시집을 갔었다. 처음에는 그의 사위 부모가 국가적인 높은 직위에 있어 그를 석방시킨 것으로 생각하고 물어보니 3월에 있었던 남조선 천안함 폭침 사건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TV보도를 통하여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자 그는 자기 사위가 천안함 폭침 사건에 참가해 그 공로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고 그가 요청하면서 자기가 석방됐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집에 와있던 딸이 하는 말이 자기 남편이 해군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에 가서 2년 동안 잠수함 기관연수를 받고 돌아와 황해남도 과일군에 있는 해군부대에서 잠수함 기관장으로 근무하다가 이번 3월에 남조선에 가서 천안함을 폭침 시키는 작전에 직접 참가했다고 말해 놀랐다. 남조선과 세계가 사건 발생 후 테러행위라며 북한을 비난했기 때문에 즉시 표창을 하지 않고 2010년 10월 시일이 지나 세계 여론이 가라앉자 중앙당과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에서 내려와 천안함 폭침 작전에서 공을 세운 함장과 부함장, 기관장과 갑판장 등 네 명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고 다른 전체 참가자들에게도 국가수훈이 수여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중앙당에서 매 사람들을 개별담화하면서 사업과 생활에서 애로점이 무엇인지 말하라고 하자 그의 사위는 현재 장인이 예심 중에 있는데 한 번만 관대하게 용서해달라고 청했다. 중앙당에서는 중앙검찰소에 그를 교양 처리하여 석방하라고 지시했다. 원래 북한에서는 비행사들과 잠수함을 타는 사람의 부모와 형제를 비롯한 가까운 친척들이 범죄를 범하면 중앙당 합의를 진행하고 처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는 직계 가족이 아니고 장인인데다 결혼식을 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개별적인 요청으로 석방됐다.

그의 사위는 또 군사칭호 대위로부터 소좌를 뛰어넘어 중좌의 군사칭호를 받고 부함장으로 승급했다고 그의 딸이 말했다. 이런 이유로 천안함 폭침 사건은 북한 총참모부 작전국 지휘 하에 황해남도 과일군에 있는 해군부대에서 집행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 사실을 알아도 말을 못하게 되어 있다. 비밀을 누설하면 잡혀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천안함 폭침사건은 북한이 1999년과 2002년 서해해상전투에서 당한 손실을 보복하기 위한 조치로 진행한 사건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강경 부인하면서 미국과 한국이 대북침략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도발행위라며 오히려 북한 군대와 인민에게 전쟁준비에 나서도록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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