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남북통일 기반 조성 세미나]

"北주민 삶의 질 높아져야 민족 동일성도 회복 가능
체제 망했다고 개인 인생도 실패한건 아냐… 존중해야"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와 한국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가 23일(현지 시각) 독일 드레스덴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 협력을 통한 남북통일 기반 조성 방안' 세미나에선 남북 교류 협력과 통일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전략과 프로젝트 등이 다양하게 제시됐다.

◇북한 인프라 개발 가장 중요

하르트무트 만골트 작센주 경제차관은 "통일을 위해 신속히 할 일과 신중히 할 일이 있지만 가장 빨리 해야 할 것은 인프라 구축 등 경제 분야"라고 했다. 그는 "과거 동독에 속한 주(州)들이 통일 이후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철도와 도로 등 생산을 위한 인프라가 비교적 잘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24일 드레스덴에서 열린‘국제 협력을 통한 남북통일 기반 조성 방안’세미나에서 한·독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드레스덴=황대진 기자
24일 드레스덴에서 열린‘국제 협력을 통한 남북통일 기반 조성 방안’세미나에서 한·독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드레스덴=황대진 기자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유라시아 철도 연결 사업이 북한 민생 인프라 건설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 안 박사는 "1972년 체결된 동·서독 간 통행 협정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통일의 출발점이 됐다"면서 "물자와 사람이 오가는 유라시아 철도 건설은 남북통일을 열어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 김일성 전 주석은 1994년 사망 일주일 전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장을 만나 '경의선을 남한과 연결해 중국 물자를 수송해주면 4억달러를 벌 수 있고 동해선을 연결해 러시아 물자를 수송하면 10억달러를 벌 수 있다. 동독은 서독에 흡수통일돼 망했지만 우리는 철도가 연결돼도 괜찮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남북 철도 연결은 김일성의 유훈 사업이기 때문에 북한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 사안"이라고 했다.

조동호 수출입은행 북한개발연구센터 소장(이화여대 교수)은 주제 발표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3월 드레스덴에서 발표한 통일 구상의 실현을 위해 특별한 전략이 필요한 핵심 분야는 결국 경제 교류"라며 "남북 경협이 활발해야 북한 경제가 좋아지고 그래야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민족 동질성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이 발표한 25개 경제 특구 중 가장 경제적 타당성이 높은 평양·남포 근교의 송림 수출제조업 특구와 금강산 관광특구를 공동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두만강 자유무역지대 건설과 함께 북한에 각종 개발 노하우를 전수하는 '북한판 KSP(지식공유사업)'도 적극 추진해 나가자고 했다.

독일 정부에서 동·서독 통합 담당 특임과장을 지낸 에버하르트 쿠르트 박사는 "북한 인권 신장을 위해서도 남북 경협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동독은 1973년 유엔에 가입한 이후 슈타지(비밀경찰)를 통한 인권 탄압 수위를 낮춰야 했다"며 "북한도 국제사회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클수록 주민들을 억압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스 위르겐 크라제만 전 독일 중앙기록보존소 부소장은 "총 8만5000명의 반인권 행위자 명단을 넘겨받아 인권 범죄에 대한 증거를 수집했다"며 "불법 처형 등 인권 유린을 지시한 사람이 실제 총을 쏜 사람보다 강한 처벌을 받았다"고 했다.

◇"북한 주민까지 실패한 것 아니다"
 

 
 
만골트 경제차관은 "통일 후 25년이 지난 지금 구동독 지역 경제는 구서독 지역의 70~80% 수준까지 따라왔지만, 동독과 서독 출신 주민들 사이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과 관련해 "체제가 실패했다고 그 국민까지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면서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쪽이 실패한 쪽에 눈높이를 맞추고 존중해줄 때 비로소 통일은 완성된다"고 말했다. 박명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은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이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이런 정서를 어떻게 변화시켜서 북한과 평화·인권·교류·통일을 동시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종합적 비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재신 주독일 대사와 디르크 힐버트 드레스덴 부시장,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을 비롯해 한·독의 통일·경제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작년 3월 28일 이곳 드레스덴 공대를 방문,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확대와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을 골자로 하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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