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말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 주민이 2만7500여 명에 이르렀다. 북한 동포가 필사적으로 대거 북한을 탈출하기 시작한 게 1995년 대(大)기근을 전후해서다. 불과 20년 만에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3만 명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중국 일대에 거주하는 탈북자 수는 많게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탈북자는 북에 사는 2500만 동포와 대한민국을 연결해주는 통로이다. 이 나라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성공 스토리는 북한 3대 세습 김씨 왕조의 압제에 짓눌려 사는 북 주민들에게 희망의 등불 같은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이 나라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은 희망을 갖기 쉽지 않다고 한다.

조선일보 연중 기획 '통일이 미래다' 기획 기사들에 따르면 일부 탈북자는 "내가 이 고생을 하려고 탈북한 것인지 답답하다"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쏟아냈다. 최근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탈북자 178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20.5%가 '지난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79%는 '우울하고 슬프다'고 했다. 탈북자 자살률은 일반 국민의 3배에 이른다.

탈북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차별과 실업(失業)이다. 북에서 대학을 졸업한 전문 직종 출신 탈북자들도 막노동이나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일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탈북 근로자들은 근무시간은 국내 근로자들보다 긴 반면 월급은 3분의 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탈북자라고 밝히면 무조건 채용을 기피하는 노골적 차별도 심각하다고 한다. 명문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까지 취직하지 못해 속을 끓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청년 실업난에 '탈북 디스카운트'까지 겹쳐 있기 때문이다.

한 탈북자는 "식당 일을 하려고 해도 조선족은 써도 탈북자는 싫다고 해서 신분을 속이고 취업했다"고 호소했다. 일부 지역에선 탈북자 출신 학생들과 같은 학교에 배정되는 것을 대놓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저절로 "차라리 북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절망의 땅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는 견디기 힘든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탈북자 지원 정책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짚어볼 때가 됐다. 현재는 탈북자의 초기 정착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학 특례 입학과 장학금 지원은 하고 있지만 정작 탈북자들에게 필요한 직업 교육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과 취학, 각종 사회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차별 방지법' 제정을 검토할 만하다. 아울러 탈북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과 같은 적극적 탈북자 취업 지원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