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집권 이후 소원해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최근 북한에 대해 '관계 개선' '원조(援助) 재개' '지방 위주'의 세 가지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이에 따라 중국 지린성은 9일부터 북한이 '에볼라 방역'을 내세워 한동안 중단시켰던 중국인의 북한 관광을 재개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북한으로의 여행 경로가 원상으로 회복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8일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의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왕 부장은 우리나라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지금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것을 계기로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70년이 되는 해로 지금까지의 국제 질서를 쇄신·개선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국제관계 설정을 강조했다. 이런 방침에 따라 중국과 북한 사이에도 변화 기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북·중 관계는 시 주석이 2013년 집권한 뒤 일관되게 북한 핵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히면서 전례 없이 냉각됐다. 김정은이 2013년 3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그해 말 중국통이던 장성택을 처형하자 중국은 식량·기름 등의 대북 경제 원조를 크게 줄였다. 양측의 차관급 이상 고위 관료 교류도 눈에 띄게 축소됐다. 시 주석과 김정은 간의 정상회담 얘기도 쑥 들어갔다. 북한도 관영매체를 통해 중국을 '줏대 없는 나라'라고 공격하는 등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한·중 관계는 '정열경열(政熱經熱·정치 경제 모두 뜨겁다)'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가까워졌다. 시 주석은 역대 중국 지도부 가운데 처음으로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은 북이 최근 급속도로 러시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의식했을 수 있다. 또 시 주석과 김정은이 올해 러시아와 중국의 2차대전 승전 기념 행사 등에서 접촉 또는 회담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미리 껄끄러운 부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일부에선 "우리 정부가 중국의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참여 요구 등에 미온적인 반면 새누리당 등을 중심으로 사드(THAAD· 미국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허용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중국이 대북 관계를 개선하는 게 자국의 '핵심 이익'에 맞는다는 판단을 내렸다면 동북아 전반에는 지난 몇 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중국과 그동안 구축해 왔던 북핵(北核) 공조를 앞으로도 흐트러짐 없이 유지해 나가는 일이다. 시 주석이 그간 밝혀온 북핵 불용(不容) 입장을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강조하고 이를 통해 북의 변화를 끌어내도록 할 필요가 있다.

북·중 사이에 인적·물적 교류가 늘어나면 김정은 등장 이후 본격화된 북한 경제의 시장화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이 문제에서도 한·중이 협력해 나갈 외교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사드 문제 등에서도 객관적·과학적 근거를 갖고 중국을 설득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 이 문제로 중국의 오해나 반발을 키워 한·중 관계와 대북 공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이제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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