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간부들을 대상으로 청렴한 생활태도를 요구하며 사리사욕을 경계 하라고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간부들에게 “물욕은 사상적 변질의 첫걸음으로 간부들이 사생활에 지나치게 머리를 쓰게 되면 혁명과업 수행에 무관심하게 된다”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절대로 잘 살기를 바라지 말아야 하며 인민들과 꼭 같이 생활하는 것을 체질화 습성화하라”고 강조했다.

이애란 박사(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이애란 박사(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김정은은 과연 사람의 본성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잘 먹고 잘 살지 못하는데 왜 간부를 하겠는가?

북한주민들이 간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이지 결코 김정은의 꼭두각시가 되어 세습독재정권을 지켜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김정은에게 줄을 잘 서서 간부 자리를 유지해야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간부들에게 ‘청렴결백하라’, ‘인민들보다 잘살지 말라’고 요구한다고 하니 소가 웃다가 꾸러미가 터질 일이다. 아무리 순한 양도 자신의 먹거리를 빼앗으면 들이받게 된다.

북한에서 배급제가 무너지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다 굶어죽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취득한 사람들만이 잘 먹고 잘 살 게 된지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북한 간부들의 부정부패 기술도 상당히 발전해 이제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북한에서 배급제를 실시하던 시절의 부정부패와 배급제가 중단된 이후 지하 시장경제하에서 행해지는 부정부패는 내용과 질의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배급제에 의지해 살아가던 시절에는 간부들의 부정부패라야 기껏 자신이 챙길 수 있는 물품에 한정돼 있었다. 당시 부정부패 단속에 걸린 간부들의 집 창고를 털어보면 쌀이나 생필품(옷감 ,신발, 비누, 설탕, 과자, 손목시계, 옷)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지금은 위안화나 달러 같은 현금이 많다.

배급제 시절에는 돈을 가져도 물건을 사기가 어려웠고 현금으로 만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에서도 지하시장경제가 활발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물보다는 현금이 더 중요하게 됐다. 현금도 북한 돈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달러나 위안화를 모은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부정부패를 빌미로 간부들을 바짝 조이면 그만큼 탈북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 입국한 약 3만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의 면면을 보면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가 북한 당국에 의해 부정부패로 몰리거나 불법 행위가 적발된 이들이 많다. 집안에 있던 물건과 장사 물건을 몽땅 압수당하고 처벌을 당할 처지가 되면 탈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먹고살만한 경제적 환경을 전혀 만들어주지 못하면서, 열심히 노력해 재산을 모으면 부정부패로 몰아 재산을 몰수하고 공개처형을 하는 반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인 북한정권이 탈북을 부추긴 것이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돈이 있어도 걱정이고 돈이 없어도 걱정이다. 돈이 있으면 부정부패로 몰려 감옥에 가거나 공개처형당하는 것이 걱정이고 돈이 없으면 굶어죽거나 꽃제비가 되는 것이 걱정이다.

북한에서 부정부패를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자리는 법을 집행하는 검찰과 안전부, 노동당, 보위부 등이다. 북한은 형식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장마당이나 지하시장경제는 그 자체가 불법이다. 이 지하시장경제를 통제하는 기관이 검찰과 안전원이다. 그래서 이들의 횡포는 정말 극에 달해 있다. 횡포와 함께 벌어들이는 부정부패 재산도 엄청나다.

검찰과 안전부의 위에는 노동당 조직부와 간부부가 있다. 이 조직들은 간부사업을 통해 검찰과 안전부를 통제하고, 물 좋은 자리에 사람을 앉히는 인사를 책임지기 때문에 노동당 간부들도 역시 부정부패의 핵심 고리이다. 보위부는 세관과 외사부를 통해 중국으로 여행할 수 있는 증명서를 발급한다. 또 동향을 감시하고, 중국 여행이나 무역 등을 관장하는 업무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당 간부는 당당하게 해먹고,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해먹고, 안전원은 안전하게 해먹고, 행정간부는 행패질하며 해먹고, 교원은 교활하게 해먹고, 사무원은 살살 해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부정부패야말로 북한정권을 유지하는 핵심동력이며 김정은에게 충성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인데 김정은이가 부정부패척결의 칼을 빼들었다고 하니 “까마귀 하루에 열 두 가지 소리하다가 나중에는 제 죽을 소리까지 한다”는 격이다. 김정은이 드디어 자기 무덤을 파는 모양이다.

최근 북한에는 “당이 정책을 세우면 인민은 대책을 세운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김정은이 간부들에게 인민들처럼 가난하게 살다가 굶어죽으라고 정책을 세우면 간부들은 어떤 대책을 세울까? 대량 탈북이 그 대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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