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 당쟁과 무능 자책하며 훗날 대비한 西厓 안목 본받아
불통과 人事 잘못에서 비롯된 지난 2년간 국정 난맥 고치고
'苦言 충신' 자리 있나 자문하며 內閣에 힘 싣고 국민과 대화를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은 피와 눈물의 기록이다. 국토 전체가 잿더미로 변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른 7년 전쟁(임진왜란·정유재란, 1592~1598)의 지옥도(地獄圖)에 대한 통한(痛恨)의 보고서다. 여기서 '징비'란 시경(詩經)의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후에 환란이 없도록 삼간다)'에서 유래한다.

서애는 전쟁 내내 조선의 최고 수뇌부였다. 병조판서, 도체찰사(都體察使·군 최고사령관), 영의정이었다. 징비록은 유성룡의 뛰어난 국제정치적 안목과 위기 대응 능력을 증명한다. 전쟁 발발 직전에 이순신과 권율을 중용한 서애의 용인술이 놀랍고 1695년 일본 교토에서 중간(重刊)될 정도로 서술의 객관성도 빼어나다. 하지만 징비록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자신을 포함한 조선 지도층에 대한 차가운 반성과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뜨거운 연민이다. 끊임없는 당파 싸움으로 나라를 망친 국가 엘리트들의 무능을 송곳처럼 자책(自責)한다. 옛일을 뉘우쳐 훗날의 우환에 대비하는 징비가 탄생하는 위대한 순간이다.

최근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그런 자기 성찰이 없다. MB가 남긴 성과도 있겠지만 곳곳에 가득한 사실 왜곡과 아전인수식 태도는 '정직성이 내 삶의 최대 자산이며, 이 책을 쓰면서 자화자찬만큼은 피하려 했다'는 대목에서 실소(失笑)를 머금게 한다. 멋진 제목과는 달리 '대통령의 시간'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함께 역대 최악의 회고록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일을 뉘우쳐 미래를 준비하는 자기반성이 송두리째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도 퇴임 후에는 회고록을 남기게 될 터이다. 앞으로 쓰게 될 회고록에서 박 대통령이 지난 2년을 어떻게 서술할지는 청와대가 펴낸 정책모음집에서 예측할 수 있다. 이 자료는 '경제와 국가 혁신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골조를 세운 2년이었으며 정책이라는 키워드로 국민과 소통하는 법을 찾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사회의 평가는 정반대여서 신랄하기 짝이 없다. 지난 2년의 실상은 박근혜 정부 스스로의 호평과 야당의 혹평 사이 그 어딘가에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청와대의 현실 인식이 장밋빛일수록 위기 극복의 전망은 불투명해진다는 점이다. 전란(戰亂) 직전인 1591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성일이 민심을 동요시키지 않기 위해 임박한 전쟁의 징조를 강하게 부인했을 때 파국은 예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전쟁 중 김성일의 분전(奮戰)은 잊히고 오판(誤判)의 기록만 후세에 남았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는 외교·안보 분야를 선방(善防)했으며 복지 공약의 큰 줄기를 지키기 위해 애써 왔다. 하지만 계속된 청와대발(發) 국정 난맥은 밤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대통령의 노력을 크게 얼크러뜨렸다. 소통에 기초한 정책조율과 적재적소의 탕평 인사가 부재했다는 게 핵심 원인이었다. 며칠 전 박 대통령은 당·정·청이 국정의 공동 책임자라고 강조했는데 정부와 여당, 청와대가 동등한 국정 주체로서 협의하고 소통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 뜻이라면 매우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의 폐쇄적 리더십을 수정하겠다는 전향적 움직임으로 읽고 싶은 것이 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이다.

박 대통령의 5년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중차대한 시간이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중국과 핵 능력을 키워가는 북한, 껄끄러운 일본에 둘러싸인 우리가 지금처럼 국정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 복지 국가 만들기와 통일 기반 닦기에 매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꿈은 박근혜 대통령이 내각에 힘을 실어주고 열린 자세로 국민과 대화해야 비로소 실현 가능하다.

유성룡·이순신의 헌신과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떨쳐 일어난 의병(義兵)들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은 국망(國亡)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절대 권력에 집착해 숱한 옥사(獄事)를 일으키고 아들 광해군까지 끊임없이 견제했던 선조조차도 쓴 말을 마다치 않는 서애를 중용하고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는 안목은 있었다.

박 대통령은 고독한 자신 옆에 오늘의 유성룡과 이순신을 위한 공간이 있는지 엄숙히 자문(自問)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가 옛 잘못을 고쳐 미래로 가는 담대한 징비로 기록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징비의 순간 없이 위기 돌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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