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호 워싱턴 특파원
윤정호 워싱턴 특파원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에 눈까지 겹쳐 미국 연방정부가 셧다운됐던 지난 17일, 워싱턴DC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이 있었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북한인권위원회, 조지 W 부시 연구소, 연세대가 공동 개최한 '북한 인권 대토론회'장이었다. 아침 8시부터 세미나장을 가득 메운 200여명에게 혹한은 아무 문제가 안 됐다.

이 자리에는 특히 북한 인권 실태를 국제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주역들이 다 모였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 위원장, 소냐 비세르코 전 위원,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인권특별보고관 등은 이날도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의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뜨거웠고, 한 참석자는 "보통 이런 세미나는 오후가 되면 자리가 텅텅 비는데 오히려 참석자가 늘어났다"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워싱턴DC의 뜨거운 관심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북한 인권이 어쩌면 한국이 당사자일 수 있는데, 왜 다른 나라보다 뒤처져 있는지를 외국 전문가들은 궁금해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고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는 데다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처리했는데, 왜 유독 한국만 10년 이상 북한인권법을 놓고 갈등만 빚느냐는 거였다. 북한인권법을 2005년 발의했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한국적 상황을 설명하면서 좀 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해봤지만, 커비 전 위원장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는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문제"라며 "나의 조국인 호주에서도 초당적(超黨的) 사안이었다. 한국의 진보 진영도 북한 인권과 관련해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호주 대법관 출신인 그는 소수 인권을 중시하는 '리버럴'이다. 우리로 치면 진보 인사인데, 북한 인권에 관한 한 가장 적극적이다.

우리 정부에 대한 질타도 있었다. 한 참석자는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어둠에 묻혀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해야 한다"며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인터넷 기반을 가진 한국이 북한에 인터넷이나 방송을 확산시키지 못한다면 대형 풍선을 통해서라도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대북 전단 날리기를 정부가 사실상 금지한 데 대한 우려였다.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라디오를 통한 정보 유입 활성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세미나에 대해 북한은 상당히 거칠게 반응했다. 물리적 조치까지 언급할 정도로 민감했다. 김정은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하고 북한 엘리트는 김정은과 차별화해 통일 후 출구전략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에 발끈했을 수는 있다. '최고 존엄'을 건드린 데 대한 즉각적 반박으로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아프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 인권 문제가 이처럼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이 대화 상대라는 딜레마만 앞세워 북한 인권을 소홀히 한 정부가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 국제 세미나가 여실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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