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키던 '꼬마계획' 할당 못 채우면 혼나니 고철 줍느라 학교 못 가
市場 자리 잡은 지금은 사상보다 물질 중요해 돈 번다고 학교 안 가
통일 한국 미래 대비해 식량보다 교육 지원을

조동호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
조동호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교수
학교에 가지 않는 북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과거엔 '꼬마계획'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더니 최근엔 시장 때문에도 가지 않는다. '꼬마계획'이란 학생들에게 분담되는 각종 물자 조달을 의미한다. 약초를 캐오라고 하고, 토끼 가죽을 내라고 한다. 파철, 파동, 파고무, 파지 등을 가져오라고 하기도 한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북한 사전은 '꼬마계획'을 "소년단원들이 좋은 일 하기 운동의 목표를 내걸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세운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일 하기 운동'이란 학생들이 나라에 보탬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벌이는 대중운동이다. 6·25 전쟁 후 복구가 시급했던 1954년 봄 진행된 벽돌 모으기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1970~80년대에는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꼬마 5개년 계획' '꼬마 7개년 계획' 등도 수립되었다.

그나마 경제가 괜찮았던 시절에는 사정이 나았지만 1990년대 경제난에 빠지면서 '꼬마계획'은 녹록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할당된 계획을 못 채우면 호된 비판을 받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숙제는 뒷전이 되었다. 고철 조각 하나, 깨진 병 하나라도 찾기 위해 온 마을 온 산을 뒤지며 다니는 일이 급했기 때문이다. 좀 사는 집 아이들은 돈 주고 사서 내기라도 냈지만 없는 집 아이들은 자연스레 학교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꼬마계획'은 아직도 있다. '꼬마계획'을 통해 모은 재원으로 무기를 만들기도 한다. 2013년 6월 함흥에선 소년단원들이 마련한 방사포 10문을 군대에 증정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 안 가는 아이들이 생기고 있다. 공부 잘해서 대학에 갈 게 아니면, 돈이나 버는 것이 훨씬 낫다는 계산에서다. 그만큼 물질 만능주의가 퍼졌다는 뜻이고, 시장에서의 돈벌이 기회가 많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긴 이제 북한 경제는 시장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4인 가족의 생활비는 북한 돈으로 최소한 20만원 정도 드는데 공장 나가봐야 2000~3000원 받을 뿐이다. 결국 시장에 생계를 의존해야 한다. 장사를 하든 날품을 팔든 가족 중 누군가는 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학업을 포기할 것을 부추기기도 한다. 부모는 이미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국유(國有)인 주택도 사고팔며, 시장에는 중국·동남아 물건은 물론 '철천지 원쑤'인 남한 제품도 널려 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 어차피 당이나 군의 고위직으로 키우지 못할 자식이라면 부자를 만드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고난의 행군' 이후 시장의 확산을 보며 자라난 북한 청소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치보다는 경제, 사상보다는 물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세대이다. 그래서 당원보다는 '돈주'(신흥 부유층)가 되고 싶어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 입장에서는 큰일이다. 미래 통일 한국의 한 축을 담당할 북한 아이들이 상식과 지식은 부족한 채 돈만 아는 세대로 자라난다면 통일 '재앙'일 수 있다. 자칫하면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은 단순 육체노동자로 전락하면서 심각한 남북 지역 갈등을 오래도록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나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은 식량과 영양 지원에 그치고 있다. 굶어 죽는 사람도 이젠 없고 오히려 시장에서 부를 축적하는 주민이 많아지고 있는데 최악의 경제난 시절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모든 아이가 학교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과외까지 하면서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아직은 시골 일부 학생의 문제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대책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북한 당국의 책임이지만 통일 준비를 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임무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