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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美 핵정책 변화 주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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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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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英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삼인사각(三人四脚)의 달리기를 보듯 불안한 미국·한국·북한 관계는 미 국방부의 ‘핵 태세 검토(Nuclear Posture Review)’ 보고서의 비밀부분이 뒤늦게 미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새로운 장애물을 맞이했다.

장애물을 성공적으로 넘으려면 우선 장애물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국내의 NPR보고서 이해수준은 뚜렷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근 공개된 보고서의 비밀내용을 지난 1월 8일 미 의회에 제출된 공개내용의 틀 속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NPR보고서의 핵심은 미국의 21세기 신(新) 핵정책이 냉전의 삼중점 체제(triad system)에서 신(新) 삼중점 체제로 변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냉전 핵정책은 대륙간탄도유도탄, 전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유도탄의 삼중점 체제를 기반으로 소련을 억지하는 것이었다.

탈냉전의 세계사적 변화를 겪으면서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와의 협력이 증진되자, 미국은 더 이상 냉전 삼중점 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냉전기간에 1만개 이상 보유했던 핵탄두 수를 현재 6000개로 감축했으며, NPR보고서는 1700∼2200개로 감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NPR보고서는 소련 없는 21세기의 신 핵정책으로 냉전 삼중점 체제의 감축과 함께 신 삼중점 체제의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 내용으로 핵·비핵 공격능력,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적극·소극 방어 체제,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는 방어 하부구조를 들고 있다.

미 국방부는 NPR보고서의 신 삼중점 체제를 설명하는 비밀부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가상 사태를 상정하면서 기존의 러시아 이외에 ‘악의 축’으로 분류돼 있는 이라크·이란·북한 그리고 중국·리비아·시리아를 가상 목표에 포함시켜 국내외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냉전기간의 삼중점 체제에 이어 미 국방부가 NPR보고서에서 제안하고 있는 신 삼중점 체제는 현재로서는 21세기 미국의 신 핵정책으로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NPR보고서는 최소한 부시 행정부 기간에 미 국방부가 추진하길 바라는 정책 구상이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한반도는 중요한 핵사용 가상 사태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미국의 21세기 신 핵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은 시급하다.

테러나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전술 핵무기의 공격적 사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만 핵 정전론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핵 억지력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경우에는 1990년대 초반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래 핵 없는 한반도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으므로, 이를 준수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신 핵정책이 추진되도록 한·미 공조가 이뤄져야 한다.

NPR보고서의 비밀부분은 부시 미 대통령이 ‘악의 축’ 연설에서 보여주었던 대량살상 테러에 대한 강경입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더 이상 한반도나 동아시아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신의 국내 안보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부시 행정부와 실질적 협상을 추진하려면 과거 클린턴 행정부와의 협상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최소한의 신뢰가 있다면 북한을 이러한 방향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 NPR보고서 비밀부분의 공개가 성급하게 ‘핵의 축’으로서의 미국 논쟁으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 이전에 미국의 21세기 신 핵정책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이러한 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형성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시민사회도 이제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차이를 인식하고 활용할 줄 아는 원숙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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