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일본에 대해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철천지 원수라고 북한 주민들에게 계급적 반일선전교양을 계속 하면서도 이번에 김정은 정권에서 북·일 정부회담을 가지고 납북자문제를 논의하게 된 것은 북한이 노리는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사망 후 김정은이 집권하여 3년이 돼오지만 세계적 판도에서 북한의 정치지도자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하여 TV와 신문, 방송을 통하여 많은 홍보를 하면서 우선 중국주석과 동등한 위치에서 평양이나 북경에서 회담을 진행하여 만방에 과시하여야 하겠으나, 중국의 동의가 없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이 지도자로 된 다음 중국주석처럼 세계가 관심을 가지는 정치인을 먼저 만나려는 의도로부터 평양을 방문한 몽골 대통령까지 김일성종합대학에 가서 강연하면서 사회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가 더 좋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만나지 않고 오로지 중국주석과의 만남을 기대하였었다.

그런데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을 먼저 초청하여 만나고 김정은을 만나주지 않기 때문에 고심 끝에 다시 세계적 관심이 있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납북자문제해결을 위하여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과 회담하도록 하기 위한 작전으로부터 북한은 일본과의 정부급 협상을 시작하였다고 북한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북한에서 초보적인 안건을 가진 것은 첫째 납북자문제 해결이라는 항목을 가지고 전 총리 고이즈미처럼 일본 아베 총리가 평양방문을 하여 김정은과 공식회담의 기회를 가지도록 조성하며, 둘째 일본으로부터 납북자문제를 빌미로 지난 시기 36년간의 조선강점피해 보상금차원에서 1차적으로 100억달러를 받아내자는 것이다.

셋째 조총련에서 매해 북한에 바치는 납부금을 일본은행에서 자금을 선대하여 가져다주고 환불을 하지 못해 도쿄에 있는 조총련 중앙 건물이 매각된 사태를 시급히 막고 사멸되어 가는 조총련을 살리자는 것이며.
넷째 만경봉92호를 비롯한 북한 선박들이 일본에 자유롭게 입출항을 할 수 있도록 보장받아 대남, 대일공작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진행하자는 것이다.

다섯째 조총련 간부들을 비롯한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들과 상인들이 평양을 비롯한 북한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낙후한 북한 경제사업에 발전된 설비들을 투자할 수 있도록 일본정부가 승인하도록 하자는 등 여러 가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본과 납북자문제를 가지고 회담을 재계한 것이다.

또 일본정부와 극치의 상태까지 도달한 중국정부와 한국정부가 세계 여론에 동참하여 북한에 대해, 특히는 젊은 나이에 정권을 세습 받은 국방위원회 1위원장 김정은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동조하며 지원해주지 않으면 북한은 단호하게 적국인 일본과도 손잡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이를 위해 북한에서는 일본에 신용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먼저 국방위원회 직속으로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를 내오고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서대하를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으로는 국가안전보위부 반탐국장 김명철, 인민보안부 주민등록국장 박영식을 임명하였다.

처음 북한에서는 일부 간부들이 반대도 했지만 초기 목적을 달성하고 일본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일련의 조건들을 먼저 이행하고 일본총리가 일정한 액수의 돈을 가지고 오면 약 30명 정도의 납북자를 인정하고, 납북되어 대남, 대일공작기관에서 근무하지 않고 사회에 배출된 일본인들을 돌려보낼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북한이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제안하고 성의 있는 태도를 보였지만 일본 측이 조총련 중앙 건물의 매각을 중지하고 조총련간부들을 비롯한 재일교포들의 북한 방문 승인과 만경봉92호를 제외한 일부 북한 선박들의 일본 입출항은 승인하였다고는 하나 좀 더 성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의도에서 북일 회담을 시간이나 보내는 식으로 끌고나간 것이다.

특히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고모인 김경희가 김정은에게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이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어서 못 받은 것도 아니고 일본과 조선은 대를 이어서도 풀 수 없는 피맺힌 숙적이라고 하면서 북한이 일본과의 납북자해결을 위한 회담을 완강히 반대하여 김정은이 고민 끝에 결심을 내리지 못해 시간을 끄는 연장전으로 나가고 있다는 말도 북한에서 퍼지고 있다.

이전에 1990년대 초에 김일성이 일본정치인 가네마루 신을 초청하여 만났을 때에도 일본의 손해배상문제를 단호히 배격하였으며 2002년도 당시 일본총리 고이즈미가 평양에 왔을 때에도 김정일이 인정한 일본인 납북자도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 공개하였었는데 김정은이 할아버지 아버지의 정치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대일문제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많이 제기되기도 하고 있다.

이로부터 북한에 형식적으로나마 조직된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는 1945년 8월 일본 패망 후 조선에서 살다가 미처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들과 조선인 남자와 결혼하고 일본으로 가지 못했거나 1970년대까지 북한으로 들어온 일본귀국자를 따라 들어온 일본 여성들에 대한 재조사로 일하고 있다고 북한에서 많이 말들을 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 일본에서 납치한 납북자 중에 대남, 대일을 위한 공작사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이전에는 중앙당 연락소들에서 관리하다가 지금은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정찰총국에서 직접 관리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부에서는 알 수도 없고 알아볼 수도 없게 돼 있다.

최근에는 이번에 일본이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유린 행위를 고발하고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관련 있는 간부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하도록 발기하고 제기한 나라 중의 하나라고 하면서 역시 여우 같은 일본과는 협상의 의의가 없다고 하면서 거의 단절상태로 들어가고 다시 러시아와의 외교협상에 몰입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을 승냥이(늑대), 일본을 여우, 한국을 시라소니 라는 동물이름에 많이 비유하며 비방 중상을 일삼고 있다.

이렇게 북한은 자기들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일본과 정부급 회담을 해왔지 결코 일본인 납북자를 인정하고 돌려보내라는 일본인민들과 국제사회의 요구에 의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회담에 응한 것이 아니다. 북한에서 요구하는 조항을 일본이 다 수용해도 북한에서는 설사 납북자를 김정일처럼 일부 인정하고 돌려보낼 수 있어도 특수기관에서 근무한 사람들은 절대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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