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변화의 길] [3] 미얀마 대통령 선임보좌관 인터뷰

"지도자 결단으로 체제전환… 안했다면 지금 北과 비슷할 듯"
"개방의 마차는 기다려주지 않아"

 
 
꼬 꼬 흘라잉(59·사진) 미얀마 대통령 선임정치보좌관은 "군사 봉건주의 체제인 북한이 하루아침에 변하기는 어렵겠지만, 미얀마가 그랬듯 지도자가 결단한다면 위대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며 "북 지도부는 주민의 열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꼬 꼬 흘라잉 보좌관은 지난달 16일 미얀마 양곤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어떤 나라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가는 흐름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개혁·개방이라는 마차에 빨리 올라타지 않으면 마차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미얀마 군부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체제 전환에 나서면서 내린 결론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기존의 삶을 바꾸고 개선하고 싶어 한다면, 또 국경 밖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런 열망을 끝까지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미얀마는 1962년 네윈 장군의 군사 쿠데타 이후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식 사회주의'를 선언하고 50년 넘게 폐쇄 체제를 고수했다. 이로 인해 북한과 함께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비판을 받았고, 핵무기 개발 의혹과 인권 탄압 등으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2011년 취임한 테인 세인 대통령은 민주화와 시장경제로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장교 출신인 꼬 꼬 흘라잉 보좌관은 테인 세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부터 참여했다.

꼬 꼬 흘라잉 보좌관은 "미얀마가 체제 전환을 했던 시기에 '아랍의 봄'(아랍 지역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며 "아랍의 봄과 같은 상향식 체제 전환은 국민의 강렬한 열망을 개혁의 동력으로 쓸 수 있지만 과정을 통제하기 어렵고 보수·극단주의자의 우려를 자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얀마의 체제 전환이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이유는 (기존 지도부가) 기득권에 안주하는 대신 국민의 목소리에 따라 하향식 개혁을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군부는 왜 개혁·개방을 택했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등에 지고 경제를 운용할 수는 없었다. 2007년의 봉기(유류 가격 인상으로 촉발된 승려들의 반정부 시위) 이후 정치적 불안이 커졌다. 하지만 그것이 체제 전환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결국 체제 전환을 가능케 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지도자의 결단이었다."

―왜 50년 만에야 그런 결단을 했나.

"1988년 소수민족 반군들이 독립을 요구했고, 심각한 전투가 벌어졌다. 나라가 쪼개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내전만 없었다면 개혁·개방이 더 앞당겨졌을 수도 있다. 1950년대 미얀마는 동남아 선도국이었는데, 어느새 꼴찌로 떨어졌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고, 변화가 필요했다."

―개혁에 대해 이견은 없었나.

"정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최고 지도자가 변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줘 돌파했다. 사람들에게 동등한 정치적 권리, 언론의 자유를 주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체제 전환은 '울퉁불퉁한 길'이지만 지금도 62%의 미얀마인이 우리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1년 미얀마가 체제 전환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북한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은.

"북한이 인도네시아, 중국 등서 개혁·개방의 경험을 배우려 한다고 들었다. 미얀마 역시 북한이 원한다면 함께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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