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科技大서 6개월 영어교사' 在美작가 수키 김 인터뷰]

'스키 즐긴다' 답했던 대학생, '어디서 탔냐' 물으면 말 못해
각본대로 주인공 속이는 영화 '트루먼 쇼'에서처럼 외국인엔 연출된 장면 보여줘
학생들이 즐겨본다는 건 20년전에 만든 北드라마… 40년전 엘비스 앨범도 유행

북한에서 엘리트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실상을 담은 책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Without you, there is no us)를 쓴 재미(在美) 작가 수키 김(45)씨를 22일 서울 본사에서 인터뷰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그는 '평양의 영어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출간된 한국어판 홍보를 위해 이날 한국을 찾았다. 그는 지난달 본지와 전화 인터뷰〈본지 2014년 12월 10일 A2면〉를 가졌는데, 이번 인터뷰에서는 2011년 7월부터 6개월간 평양과학기술대(이하 평양과기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경험했던 것 가운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세부 일화들을 전했다. 김씨는 갑자기 '거짓말' 얘기를 꺼내 들었다.

"북한 학생들은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한 학생은 '자신이 5학년 때 토끼를 복제했다'고 하더군요. 다른 학생은 '북한 과학자가 혈액형 A형을 B형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말했어요. 유창하고 완벽한 문법의 영어를 구사하는 한 학생은 3개월 전 평양과기대에 입학할 때까지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수업 시간에 '스키'가 언급되자 학생들은 북한에서도 스키를 즐긴다고 답했다. 정작 '스키를 타러 어디로 갔느냐'고 물으면 답하지 못했다. 스키가 무엇인지조차 대부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학생들이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북한 실상을 감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한다는 걸 안 후에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안타깝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미(在美) 작가 수키 김씨가 22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재미(在美) 작가 수키 김씨가 22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거짓말' 사건 외에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자신들에 관해 얘기하도록 하고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 다른 학생들이 맞히는 게임을 했다. 한 학생이 '작년 방학 때 중국에 갔다'고 말하자, 다른 학생들이 모두 '거짓!'이라며 웃었다.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북한에서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관련된 얘기는 일체 금기였는데, 한번은 '이화여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평양과기대가 남학교였기 때문에 여학생만 있는 학교 얘기에 모두 눈을 크게 뜨며 관심을 보였다. 한 학생이 수줍게 손을 들고 '그 여학생들은 예뻤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해줬다."

―생활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었을 텐데.

"제약이 너무 많아 아예 내 나름의 '금지 행동 리스트'를 만들었다. 북한에서는 청바지를 입지 못하게 했다. 김정일이 청바지를 미국 문물의 상징으로 보고 싫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CD 플레이어 대신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게 했는데, CD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밖에도 감시 탓에 다른 지역과의 비교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금기였다. 민감한 주제라는 이유로 '통일'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한 뉴질랜드 출신 선생님은 '국제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젓가락 말고 포크와 나이프를 쓰라고 지도했다가 학교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책에서 북한을 '나라 전체가 언어·문화 면에서 갈라파고스처럼 동떨어진 섬 같았다'고 묘사했는데.

"한 학생은 내게 '세계 모든 사람이 조선말을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조선말이 너무 우월해서 다른 나라에서도 조선말을 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평양과기대에서 근무했던 2011년만 해도 인터넷을 아는 학부 학생이 없었다. 학생들이 즐겨본다는 '태양의 나라'는 20년 지난 북한 드라마였다. 내 학급을 책임지는 30대 담당관 두 명이 북한에서 유명한 미국 팝송이라며 '알로하 하와이'를 아느냐고 물었다. 찾아보니 1973년 '알로하 프롬 하와이'라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콘서트 앨범 이름이었다. 학생들은 주체사상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늘 자신이 최고라고 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깥세계와 비교했다."

―최근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북한이 '활기차고 개방적'이라고 언급한 게 논란이 됐는데.

"평양에도 화려한 길거리와 공연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은 북한 당국의 연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에 들어가면 일단 여권과 휴대전화가 압수된다. 어느 경우에든 안내원(감시원)이 따라붙는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니, 그들이 원하는 것만 보게 되는 것인데 이게 과연 북한 실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두가 각본대로 움직여 주인공 한 사람을 속이는 영화 '트루먼쇼'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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