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오고 있는가 | 나필열 지음 | 미래의창 | 240쪽 | 13,000원

20세기 들어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잃은 것이 한국의 첫 번째 민족적 비극이었다면, 국토 분단은 두 번째 비극이었다. 분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정치 이념과 사회·경제 체제하에서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고 통일의 이해득실 계산이 분주한 가운데, 《통일은 오고 있는가》는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통일에 대한 ‘열린’ 논의와 문제 제기

저자는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의 역사를 서술한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그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허망하게 갈라졌다. 이후 이어진 한국전쟁이 남북 간 적대 감정만 드높인 채 교착 상태로 끝남에 따라 통일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되었다. 현재 한반도는 양극화된 세계의 상징적 존재이자,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한반도 분단이 반세기를 훌쩍 넘은 지금, 통일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는 거의 전무한 상태다. 저자는 분단으로 인해 남북한 두 사회가 모두 비정상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정부가 각각 자신의 방식대로 사회를 재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은 물질 만능주의와 부정부패가 공동체를 위협하는 수준의 사회, 북한은 사상 초유의 병영국가로 권력 만능주의 사회가 되었다. 저자는 이 같은 비정상적인 발전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통일과 그에 대한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반도 통일, 제3의 길

그러나 오늘날 우리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통일 문제는 단순히 무력이나 흡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한반도 통일은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통일은 내부적으로는 이념적으로 분열된 한민족을 통합하는 문제인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세계열강들 사이의 세력균형을 조정하는 문제다. 한반도 통일에 ‘제3의 길’이 필요한 이유다. 《통일은 오고 있는가》가 제시하는 제3의 길은 바로 ‘통일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다. 저자는 한반도가 자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이 보장되는 영세중립국이 되는 것만이 모든 주변 열강들의 군사전략적 이해관계를 조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말한다. 세계열강들은 한반도의 통일 자체보다 그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이 깨지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완벽한 대안은 없다. 그러나 차선책은 있다. 그것은 한반도를 영세중립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는 이 지역의 영구적 평화를 유지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가능케 하는 필요조건인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지켜주는 대안이기도 하다. 오직 그 길을 통해서만 동북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이 유지될 수 있으며, 동시에 한반도 평화통일의 역사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다. -본문 132쪽


그렇다면 통일 이후의 한반도는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 민족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공통 비전만이 분단으로 인한 민족 내부의 기형적 모습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한국의 지식인과 시민사회, 즉 국민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건국이념과 통치 철학에 대한 범민족적 컨센서스(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건국이념과 통치 철학평화통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을 위한 최대의 복지와 민족 공동체의 최대 번영을 동시에 구현하는 데 있다. 저자는 여기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 바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이라고 본다. 또한 이를 구현할 방법과 기본 원칙으로 매사에 극단과 편견을 지양하고 온건을 지향하며 조화와 화평을 앞세우는 ‘중용사상’을 든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한 ‘홍중사상’이 저자가 통일 한반도의 미래로 제안하는 건국이념이다.

저자는 또한 새로운 통치 철학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를 제안한다. 북유럽 국가에서 성공 모델을 찾을 수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 같은 낡은 이념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 시장경제 체제의 장점을 받아들여 효율성을 추구한다. 동시에 진보된 복지사회 건설을 통해 인도주의적 가치와 국가 경쟁력 향상을 도모한다. 저자가 보기에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추구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통치 철학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통치 철학 중에서 홍익인간과 중용사상의 건국이념에 가장 가까운 통치 철학은 민주적 사회주의다. 그 속에는 우리 모두가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있고, 번영을 위한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 체제가 있으며, 동시에 국민 모두의 생활안정과 사회적 평등을 위한 높은 수준의 복지 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본문 209쪽

통일은 더 이상 미룰 수도, 미루어서도 안 되는 한민족 최대의 과제다. 그러나 평화를 해치는 무력 통일은 물론,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공통의 합의가 부재한 통일은 가장 피해야 할 통일의 형태다. 이러한 때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이고 개방적인 통일 논의다. 광복 이후 분단 70년을 맞이하는 해인 2015년, 저자의 질문이 어느 때보다 반갑고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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