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양 동북 교외에는 금수산태양궁전이 있다. 썩지 않도록 처리된 김일성 시신이 수정관 안에 놓여 있는 곳이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부편집장인 장쉰(江迅)은 2005년 4월 15일 북한 정부 초청으로 이곳을 방문했다가 취재 거부 통보를 받았다. 방명록에 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북한 담당자는 "기념궁 방명록에 참배 느낌을 쓰는 것을 거절한 경우는 없었다"면서 "앞으로 취재 활동은 전부 취소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북한 평양 만수대에 서 있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대형 동상. 지난해 8월 15일‘조국 해방 69돌’을 맞아 주민들이 참배하고 있다. /노동신문
북한 평양 만수대에 서 있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대형 동상. 지난해 8월 15일‘조국 해방 69돌’을 맞아 주민들이 참배하고 있다. /노동신문

더 놀란 것은 북한 요원이 "우리는 당신의 과거와 오늘의 행동에 대해 상세히 조사했다"며 내놓은 자료들이었다. 거기에는 20년 전인 1985년 상하이 어린이 예술단원으로 방북했던 자신의 일곱 살 딸 사진도 있었다. 은밀한 협박이었다. 그는 김정일 앞으로 보내는 반성문을 써야 했다. "적합하지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 안내받은 김일성화(花)·김정일화 전시관에서는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김일성화이고, 인간사회에서 가장 우아한 꽃은 김정일화입니다." 속으로는 "식량 공급이 문제가 되는 국가에서 이 두 꽃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불합리함을 느낀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한국산 라면은 보름치 월급 '돈 라면'

 
 
북한이라는 수수께끼|장쉰 지음|구성철 옮김|에쎄|400쪽|1만8000원

[아직도 1960년대 중국에 머문 북한… 15년간 6차례 訪北 홍콩기자의 기록]

'북한이라는 수수께끼'는 장쉰이 1996년 이후 15년간 여섯 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기록한 북한의 실상이다. 그가 본 북한은 1960년대 중국에 머물러 있다. 거리에는 온통 구호로 가득 차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체사상은 백전백승의 보검이다'…. 그는 "이런 구호들이 1950~1960년대 성행했던 중국 구호의 복제판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북한 TV에는 김일성·김정일 사적을 다루거나 체제를 찬양하는 보도 일색이었다.

경제 사정도 중국의 1960년대 수준이었다. 북한 사람의 월평균 수입은 6000원. 고작 돼지고기 세 근(1800g)을 살 수 있는 돈이다. 감시원 눈을 피해 호텔 기념품 가게 직원에게 말을 걸자 "우리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고 말했다. 한국산 제품은 은밀히 거래되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간부 계층이 즐겨 먹는 한국산 라면 값은 2500~3500원이다. 월수입 절반에 맞먹는 한국산 라면을 북한 사람들은 '돈 라면'이라고 부른다.

수돗물은 정해진 시간에만 공급된다. 고급 호텔에도 샤워할 수 있는 온수는 저녁에 2시간만 나온다. 평양 시내에는 20층 넘는 민간주택이 있지만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있어도 사용하지 않아 대부분 계단을 이용한다. 전력이 부족해 밤이 되면 평양 시내는 "칠흑같이 어둔 바다 깊숙한 곳에 있는 것처럼" 암흑의 도시가 된다.
 

◇"위대한 장군님을 위해 공부한다" 

 
 
평양의 영어 선생님|수키 김 지음|홍권희 옮김|디오네|352쪽|1만5000원

["외국에서도 '우월한' 조선말 쓰죠?" 바깥 세계 모르는 엘리트 학생들]

'평양의 영어 선생님'은 재미교포 소설가인 저자의 북한 체험기다. 2002년 이후 다섯 차례 북한을 방문한 저자는 2011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북한 고위층 자제만 다니는 평양과기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수업에 쓰이는 교재나 프린트물은 미리 담당관에 보고해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학생 중 누군가는 수업 내용을 보고하거나 녹음하고 있다는 말을 학교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었다.
먼저 놀란 것은 학생들이 외부 세계에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한 학생은 "세계 모든 사람이 조선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선말이 너무 우월해서 영국·중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조선말을 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들은 주체사상탑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놀이공원도 세계 최고라고 했다. 학생들은 늘 북한 것이 '최고'라고 선언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깥 세계와 비교했다. 과학기술대학이라면서 학생들에겐 인터넷 사용이 허용되지 않았다.

작문 시간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데 힘을 합하고 위대한 장군님을 자랑스럽게 하기 위해 공부를 할 것"이라고 썼다. "그들은 무서워서 거짓말을 하고 수령의 위대성을 자랑하도록 강요받았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진심으로 믿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중 어떤 것이 더 슬픈 현실인지 나는 정할 수 없었다."

북한을 며칠 여행하고 보여주는 것만 보고 와서 '북한은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여러 차례 장기간 북한에 머물렀던 홍콩 출신 중국 저널리스트와 한국계 미국 작가가 말하는 북한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적이지도 공화적이지도 않으며 인민을 가장 무시하는 북한이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이 기이할 따름이다"(장쉰), "끔찍한 음식과 모든 물자의 부족은 이해하겠지만 정말 부족한 건 그게 아니에요.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 여기는 그게 없어요"(수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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