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의 인기 영화·TV드라마 상(賞)인 골든글러브(Golden Globe Awards) 올해 시상식장에서는 뜻밖에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화제의 인물이 됐다.

72년 역사를 가진 골든글러브는 미국 헐리우드에서 취재하는 외신기자협회가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인기를 모았던 영화나 드라마를 대상으로 심사해 주는 상이다. 특히 영화 부문의 경우, 한달 뒤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의 전초전 성격을 갖고 있어 전세계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골든글러브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나 배우의 경우 아카데미에서도 상을 받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미디어 뿐 아니라 유명 배우들도 대부분 이 시상식에 참석해, 누가 수상자가 될 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데 올해는 이 자리에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이 주요 화제 중 하나가 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비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우리 시각으로 12일 열린 시상식 첫 무대에 진행자로 등장한 여배우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포엘러부터 그랬다.

이들은 시상식 첫 인사말에서 관객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전한 뒤 “우리가 오늘 밤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멋진 TV 프로그램 뿐 아니라 북한이 (상영해도 좋다고) 오케이해준 모든 영화들을 축하하기 위해서”라고 말해 객석의 웃음과 박수를 받았다. 북한이 작년 말 김정은 위원장을 소재로 해서 소니픽처스가 만든 영화 ‘인터뷰’를 극장에서 상영하지 말라며 협박하고 이후 소니 영화사 서버 해킹 사건까지 벌어졌던 것을 풍자하며 시상식을 시작한 것이다.

시상식 중간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개그우먼 마거릿 조가 김정은 위원장을 연상시키는 북한 인민군 복장으로 무대에 등장해 청중석에 앉아있는 배우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다른 여배우들과 함께 TV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시상자를 소개하기 위해 나선 마거릿 조는 자리에서, 마치 화난 듯 뚱한 표정을 짓다가 북한 상황을 시사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북한 인민군 복장으로 무대에 선 마가렛 조./골든글러브 홈페이지
북한 인민군 복장으로 무대에 선 마가렛 조./골든글러브 홈페이지

옆에 있던 에이미 포엘러가 마가렛 조에게 “오늘 쇼(시상식)가 즐겁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인민군 복장의 마거릿 조는 화난 듯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티나 페이가 다시 한번 객석을 가리키며 “왜 즐겁지 않느냐. 이렇게 많은 헐리우드 스타를 볼 수 있는데?”라고 되물었고, 그녀는 그제사 “북한에서는 이런 건 쇼도 아니다”라고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내놓았던 것.

북한 인민군 복장 차림의 그녀는 그러면서 “여기에는 커다란 사진 하나 만들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카드를 들고 있지도 않지 않냐. 한 자리에 수천 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기타를 치지도 않지 않냐. 게다가 데니스 로드먼도 없지 않냐”고 말했다. 커다란 사진이라는 것은 북한의 권력자 얼굴이 담긴 사진을 주민들이 카드섹션을 통해 구현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데니스 로드먼은 북한을 자주 찾으면서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친화적 발언을 자주 하는 전 미국 프로농구선수다. 한마디로 그녀는 북한의 일인 중심 체제와 상황을 종합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그저 퉁명스러워 보이기만 하는 얼굴로 전하는 그녀의 모습에 관객은 다시 한번 박수를 터뜨렸다.

그녀는 시상이 끝난 뒤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이 담긴 잡지를 든 채 유명 여배우 메릴 스트립과 사진을 찍으며 주변에 있던 배우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메릴 스트립은 미국 최대의 영화상으로 꼽히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세 번 수상한 유명 배우다.
 

유명 배우 메릴 스트립과 사진을 찍고 있는 마가렛 조./골든글러브 홈페이지
유명 배우 메릴 스트립과 사진을 찍고 있는 마가렛 조./골든글러브 홈페이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소재로 한 소니픽처스의 ‘인터뷰’는 북한의 거센 반발과 소니 서버에 대한 해킹 사건이 벌어지면서 계속해서 미국 헐리우드의 주요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이날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는 이것 말고도 최근의 프랑스 파리의 언론사 테러 사건과도 맞물려 ‘표현의 자유’가 주요 이슈로 부각됐다. 골든글러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 테오 킴마 협회장은 “북한에서 파리까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그 누구에라도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골든글러브 영화 부문에선 6살 소년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보이후드’가 작품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작품상 외에도 감독상, 여우조연상(패트리샤 아퀘트)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밖에 영화 ‘배트맨’ 의 주인공을 맡았던 마이클 키튼 같은 관록의 배우들도 수상(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대열에 합류했다.

여전히 ‘미남 배우’로 또 감독으로 활동 중인 조지 클루니는 공로상인 ‘세실 B 데밀상’을 수상했다. 이날 행사에는 에이미 아담스, 오프라 윈프리, 케빈 스페이시, 로버트 듀발 같은 여러 스타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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