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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못만난 國軍포로 삼촌… 정부만 믿은게 너무 恨스러워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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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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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상대 損賠訴 승소… 故 한만택씨 조카며느리]

잡혀있는 곳, 中공안원 이름 모두 다 알려줬지만 강제北送 막지못한 정부… 반성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 북한에 납치된 국군포로 한만택씨를 구출하려고 백방으로 뛰던 한씨의 조카며느리 심정옥씨가 17일 한씨에게 전하려고 마련해 두었던 옷가지들을 꺼내 보이고 있다. /이진한 기자 "어디에 잡혀 있는지, 담당 공안원의 이름과 연락처까지 모두 다 알려줬지만, 안이한 대응으로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부는 이제라도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합니다."지난 17일 경기도 안양의 자택에서 만난 심정옥(61)씨는 큰방 장롱에서 노란 보자기를 꺼내며 이같이 말했다. 보자기에는 남자용 바지와 티셔츠, 내의, 양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옷들은 지난 2004년 12월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 한만택(2009년 사망 추정)씨를 위해 한씨의 조카며느리인 심씨가 준비한 옷들이다. 심씨는 "한 번도 입어보지 않으셨지만, 이 옷들은 시삼촌의 유일한 유품(遺品)"이라며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고통받은 10년 세월을 얘기했다.한씨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2년 7월 군(軍)에 입대했다. 무공을 세워 이듬해 2월 금성 화랑 무공훈장을 받기도 한 한씨는 같은 해 6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실종됐다. 이후 한씨의 형은 한씨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손수 제사를 지내오다가 2003
"어디에 잡혀 있는지, 담당 공안원의 이름과 연락처까지 모두 다 알려줬지만, 안이한 대응으로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부는 이제라도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합니다."

지난 17일 경기도 안양의 자택에서 만난 심정옥(61)씨는 큰방 장롱에서 노란 보자기를 꺼내며 이같이 말했다. 보자기에는 남자용 바지와 티셔츠, 내의, 양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옷들은 지난 2004년 12월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 한만택(2009년 사망 추정)씨를 위해 한씨의 조카며느리인 심씨가 준비한 옷들이다. 심씨는 "한 번도 입어보지 않으셨지만, 이 옷들은 시삼촌의 유일한 유품(遺品)"이라며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고통받은 10년 세월을 얘기했다.

한씨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2년 7월 군(軍)에 입대했다. 무공을 세워 이듬해 2월 금성 화랑 무공훈장을 받기도 한 한씨는 같은 해 6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실종됐다. 이후 한씨의 형은 한씨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손수 제사를 지내오다가 2003년 봄 사망했다. 그는 숨을 거두면서 셋째 며느리인 심씨에게 '동생의 제사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던 2004년 11월, 심씨와 가족들은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한씨가 '북한에 있는데 남한에 있는 가족들과 상봉하기를 바란다'며 중국에 있던 자신의 며느리를 통해 보내온 편지였다. 심씨는 "돌아가신 줄 알았던 분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족 한 명 더 얻는다는 마음뿐이었다"며 "뻔히 살아 계시는 줄 아는데 누가 외면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심씨 남편은 직장생활 때문에 바빴고, 나머지 친척들은 지방에 있어 일을 맡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서울 근교에 살면서 비교적 시간이 많았던 가정주부 심씨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시삼촌'을 남한으로 데려오는 일을 주도했다.

심씨와 남편은 탈북을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과 '물밑 작업'을 진행했다. 2004년 12월 27일 한씨가 두만강을 건너 탈북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심씨와 남편은 이틀 뒤 중국으로 직접 건너가기로 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한씨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곧바로 국방부와 외교통상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심씨는 "미리 탈북 계획까지 알려준 것도 모자라 공안에 체포되고 나서도 삼촌이 잡혀 있는 곳과 담당 공안원의 이름, 연락처까지 알려줬지만, 정부는 삼촌을 지켜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씨는 이듬해 1월 6일쯤 북송됐고, 심씨가 한씨를 위해 준비한 옷도 전해지지 못했다.

심씨와 가족들은 이후에도 한씨의 탈북을 수차례 도왔지만, 한씨는 성공하지 못했다. 심씨는 "삼촌이 몇 번이나 두만강 근처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감시가 심해 결국 돌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심씨와 가족들은 2012년 가을쯤 언론을 통해 한씨가 정치범수용소에 있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중국의 지인을 통해 재차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2013년 6월 심씨와 남편, 심씨의 시고모(한씨의 여동생)는 "정부가 탈북 계획을 구체적으로 알고 난 뒤에도 송환 대책을 세우지 않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해 고인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고 북한에 인계돼 숨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년 6개월을 끌어온 1심 재판은 지난 15일 재판부가 심씨와 가족들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됐다.

재판부는 "6·25전쟁이라는 국가적 재난에 국가 존립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사람들을 송환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임인데도 공무원들의 과실로 50년 넘는 기간 염원했던 한씨의 귀환과 가족 상봉이 무산돼 한씨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심씨는 "지난 10년간 우리 가족이 (시삼촌을) 모셔 오려고 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북한에서 더 오래 사셨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속에 살아왔다"면서 "지금이라도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항소를 포기하고 앞으로 국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면 우리 가족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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