飢餓(기아)도 체제 유지 수단 삼는 北
중국의 '北 수호 의지'에 기대어 쉽게 붕괴 않고 核도 포기 안 해
THAAD 등 安保 극대화하면서 북한 市場 키우고 변화 유도할 현실주의적 交流 방식 택해야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새해 벽두에 두 가지 소식이 날카롭게 엇갈린다. '2014 국방백서'는 핵무기 체계 완성 직전인 북한 군사력의 섬뜩한 실체를 증언한다. ICBM급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더해 핵탄두 소형화에 성큼 다가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반도와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본토에까지 도달 가능한 북한 핵미사일 실전(實戰) 배치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끔찍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남북 관계의 해빙(解氷) 가능성을 알리는 소식도 있다. 통일준비위원회의 대북 제의에 김정은이 '최고위급 회담도 못 할 게 없다'며 치고 나오면서부터다. 집권 3년 차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론'의 내용을 채워 줄 돌파구가 필요하다. 김정은도 국제사회의 왕따 신세를 벗어날 탈출구가 절실하다. 남북 대화가 재개될 공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찬바람과 훈풍(薰風)이 엇갈리는 이 모습은 남북 관계의 복합성을 증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감성적 대응을 절제하고 '북한 문제'의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통일과 북핵 해결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맥락에서 한 틀에 묶여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통일 대업(大業)과 북한발 핵 위기 해소가 서로 뗄 수 없이 얽혀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북한이 쉬이 붕괴하지 않는다는 것과 북한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우여곡절로 가득한 분단 70년을 관통하는 '북한 문제'의 핵심이다.

사실 판단과 규범 명제가 결합한 북한 붕괴론은 국내외적으로 널리 유통되어 왔다. 그 나름대로 강력한 사실적 설득력과 당위론적 호소력을 동반한 주장이자 예측이었다. 북한의 세습 전체주의는 체제 재생산 능력을 탕진했으며 북한 인민 100만명 이상이 아사(餓死)한 사태가 그 증거라고 북한 붕괴론은 주장한다. 게다가 김씨 왕조는 전 국토를 수용소 군도로 만들어 인민을 노예화한 반(反)인륜적 정권이므로 붕괴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 붕괴론의 호소력이 큼에도 북한이 완강히 버텨가고 있을 뿐 아니라 핵 능력을 계속 키우고 있다는 명명백백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6·25전쟁에 이어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증명한 G2 중국의 단호한 '북한 수호' 의지가 한 배경이다. 제국으로서 중국의 국가이성이 북한을 버렸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나아가 폭압적 탄압과 감시에다 인민의 기아(飢餓)까지를 체제 유지 수단으로 삼는 북한 체제의 내구성(耐久性)이 추가적 배경이다. 북한 붕괴론은 이 요인들을 과소평가했다.

'북한 문제'의 또 다른 핵심은 북한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이 핵 포기를 대가로 경제 지원과 대미(對美) 수교를 원한다는 신화를 퍼트린 햇볕정책은 이 대목에서 결정적 과오를 범했다. 반대로 북한을 압박한 억제 정책이 핵무기 체계 완성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수십년간 매달린 북의 국가 의지를 '억제'하지 못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북한이 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명제를 합치면 한반도 통일 이전에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예상은 한반도 영구 분단론을 옹호하거나 북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발언이 결코 아니다. 다만 '북한 문제'를 풀려면 한반도 내외의 엄혹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입론(立論)일 뿐이다. 물론 현실주의만으론 충분치 않다. 미래를 꿈꾸는 이상주의가 더해져야 진정한 현실주의가 완성된다.

통일 비전을 그리는 이상적 현실주의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북핵 실전 배치를 무력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체적 핵 개발은 자유무역 국가인 한국의 선택 사안이 아니므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든 킬 체인(Kill Chain)이든 핵 대응 능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우리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남이 왈가왈부하는 것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나아가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의 남북 교류를 적극 활성화해야 한다. 분단 70년 동안 북한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을 적화하려는 김씨 정권의 의도는 여전하지만 먹고살려고 장마당에서 애쓰는 북한 인민의 처절한 노력이 북한 사회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남북 관계를 여는 정치적 현실주의에서 정통 보수인 박근혜 정부야말로 최적(最適)의 존재다. 박 대통령이 남북 교류의 물꼬를 터 북의 시장(市場)을 키운다면 통일 대장정의 위대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2015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과감한 도약을 바라 마지 않는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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