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변화의 길] [1]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저자 로빈슨 교수

"北 경제 살리는 방법은 소수가 독점하는 '기회'를 모두에게 개방하는 것뿐
김정은, 주변인물 싹 바꾸고 정치·경제 전면 개편해야"

 
 

 

 
 
세계적 정치경제학자인 제임스 로빈슨(Robinson·사진) 하버드대 교수는 "북한이 목표한 '부국강성대국'을 달성하려면 부분적 경제 실험으론 부족하고, 정치·경제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로빈슨 교수는 지난 연말 본지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현대 국가들에 체제 전환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반세기에 걸쳐 진행된 결과를 볼 때 북한 경제는 실패했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기존 체제를 앞으로도 지속할 경우 총체적으로 '실패한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젊은 지도자들은 아직 유연하고 변화에 민감해 개혁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 초기인 지금부터 적극적인 체제 전환과 개혁 조치에 나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로빈슨 교수는 "국가의 경제적 성패는 소수에게 기회와 보상이 집중된 '착취적 제도'에서 모두에게 열려 있는 '포용적 제도'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는 방법은 단 하나, 소수(少數) 권력층에 집중됐던 기회를 모두에게 개방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착취적 제도'의 국가들이 겪는 실패의 과정을 극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며 "핵심 엘리트층이 경제가 실패한 것을 알고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기존 체제에 집착하는 것도 공통된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지도자가 미리 체제를 전환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결국 그 체제가 붕괴한다는 점에선 어떤 예외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를 키우려면 대중의 필요와 열망에 반응하는 정치 체제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북한도 중국·베트남처럼 개혁·개방할 수 있을까.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이라는 시스템이 지배했고, 권력 저변이 넓은 편이라 체제 전환이 덜 어려웠다. 그러나 북한은 노동당보다 김일성 가문을 신성시하는 독재다. 이 경우 권력이 변화에 훨씬 취약해 기존 체제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진다."

―한국은 과거 군부 독재하에서 경제성장을 이뤘다. 북한도 이런 방식을 택할 수 있나.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도 인재 양성, 기술 혁신 같은 포용적 제도의 요소가 있었다. 1970년대 한국은 중공업을 육성해 경제 규모를 키우면서 미국에 대한 의존은 줄였다. 이후 민주화로 경제 발전이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폐쇄 정책으로 정권이 유지되자 변화의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체제 전환은 어떻게 촉발되나.

"착취적 제도하에서 그 내부에 포용적 요소가 존재하거나 정권에 투쟁할 광범위한 세력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 우발성도 무시할 수 없다."

―김정은이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과학은 장례식이 치러질 때마다 진보한다'고 했다. 북한에 새 지도자가 등극한 초기라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젊은 나이가 관건이 아니라 사고가 유연해야 한다. 주변을 교체하고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주변국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중국이 1978년 외부의 도움으로 개혁·개방을 이뤘느냐. 내부인들이 새로운 경제를 원하고 기회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프리카·남미의 착취적 제도의 국가들을 수십년간 방문했다. 거기에서 느낀 건 인간의 지향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번영 말이다. 북한 주민들도 똑같지 않겠나."

☞제임스 로빈슨

영국 태생의 정치경제학자로, 호주 멜버른대와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를 거쳐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비교경제학과 정치 발전 이론으로, 연구 분석 대상이 고대 왕조부터 현대사까지 폭넓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독재 저개발국 연구 권위자이며, 미 행정부와 세계은행의 자문역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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