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族 화해·통일·번영 문제를 북측과 論議할 수는 있지만 절차·시기 적합해야 하는 것
당국과 일부 '對話 만능주의', 북한 정권 安全에 기여할 뿐… 格·상호 존중 없으면 無用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우리는 지금 북한과 관련해 상반된 두 갈래 기류(氣流)에 휘말려 있다. 하나는 우리 체제를 뒤흔들려는 종북(從北)적 요소를 척결하려는 국내적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종북의 근원지인 북한과 대화하려는 유화적 움직임이다. 한쪽으로는 공산주의를 잡자면서 다른 쪽으로는 공산당과 손잡자는, 양면작전 같기도 하고 이율배반적이기도 한 모양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혼란스럽다. 지난 세월 북한의 온갖 도발에 시달려온 한국은 작년 말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모처럼 체제 수호의 모멘텀을 찾은 듯했다. 이석기 일당의 내란음모 혐의, 황선·신은미 등의 노골적인 체제 교란 행위,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정치권 진입 등이 비로소 법적 제재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국내적 상황은 유엔의 북한 인권침해 제재 움직임, 영화 '인터뷰' 상영을 방해하는 북측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미국의 대북 제재 명령 등 국제사회의 공조 노력과 맞물려 김정은 정권의 입지를 어렵게 하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지난 연말 남북회담을 갖자고 북측에 제의한 것은 느닷없는 일이었다. 마치 궁지에 몰린 북한 당국의 처지를 살펴주는 '구원투수'의 모습이었다. 북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김정은의 신년사를 통해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한술 더 떴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도 어리둥절했다.

남북한이 대화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원칙론으로 말하면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장래가 걸린 화해의 문제, 통일의 문제, 번영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 해결에는 절차와 타이밍이 선행돼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은 그럴 상황도, 그럴 때도 아니다. 북한의 도발 버릇과 남쪽의 종북 활개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급선무인 시점에 남북 대화 연출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우리가 북한 당국과 대화하는 데는 한 가지 분명한 목표가 있다. 남북이 통일이 되기 전까지 서로를 침범하지 말고 경제적으로 서로 도우며 평화적으로 살자는 것이다. 북측이 우리 체제를 위협하거나 우리 사회를 교란시키지 않는 대신 우리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대화의 진솔한 내용이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북한 인민의 삶을 향상시키고 북한 경제가 향상되면서 인권 탄압이 줄어들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가 어떻게 되고 안 되고는 한국의 공개적 관심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 당국과 일부 세력이 집착하는 '대화 만능주의'는 그런 목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금 북한과 고위급 회담을 하는 것은 북한 정권의 안전(安全)에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지금의 남북 대화는 적어도 북측에는 무력적 위협이 효과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북핵은 기정사실화되는 길로 갈 것이고, 방어적인 한·미 군사 협력은 무기력해질 것이다. 유엔의 대북 제재도 모멘텀을 잃을 것이고, 6자회담의 역할은 축소될 것이다. 무엇보다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도 묻혀버릴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빛을 잃을 것이고, 종북 세력은 때를 만난 듯이 다시 기를 펼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도 종북은 극악한 용어를 남발하며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모욕하고 있는데 남북 대화, 특히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무드에서 저들이 얼마나 기고만장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2002년 박근혜·김정일 만남을 두고 "누가 하면 로맨스고, 누가 하면 종북이냐"는 전단을 뿌린 종북·좌파를 이제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김정은 정권의 버릇은 더욱 기승할 것이다. 저들이 도발하면 남측이 대화하자고 나서 주고, 달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퍼주는 그런 패턴이 계속되는 한 어느 집단이나 세력이 그 버릇을 고치려 할 것인가? 김정은이 최고위급 회담의 조건으로 내건 '분위기와 환경'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지금 남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북 척결의 움직임과 한·미 군사훈련, 대북 전단 살포가 중지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수그러드는 때일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고 하자. 환갑이 넘은 여성 대통령이 30세의 독재자와 악수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것은 아닌데…" 하는 참담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대화가 역사에 획(劃)을 그을 수 있으려면 격(格)이 있어야 하는 법이고, 같은 '언어'를 쓰는 상식의 통로가 있어야 하며,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무게가 느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때[時]의 이로움[利]이 있어야 한다. 왜 우리 역대 대통령은 시도 때도 없이 북한 독재자를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난 모양새일까?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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