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각) 대북 제재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새해 들어 나온 미국 대통령의 첫 행정명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지난달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 소니 픽처스를 해킹했다며 "북의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응 차원의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 사이버 공격이 북의 대남·해외 공작 업무를 총괄해온 정찰총국 주도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이날 북한 정찰총국 등 단체 3곳, 개인 10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이번 조치와는 별개로 세 건의 대북 제재를 가동 중이고 유엔 안보리(安保理)도 대북 제재들을 시행하고 있다. 북 정찰총국은 이 제재들에 이미 들어가 있다. 기존의 대북 제재와 중복되는 데다 북의 달러화(貨) 거래량이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조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대북 제재를 뽑아든 것 자체가 갖는 정치적 무게와 상징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이번 제재는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한 직후에 나왔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 온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3일 "미국의 제재는 민족 화해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고 북남 대화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며 "통일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천명한 남조선 당국자의 새해 인사가 빈말이 아니라면 미국의 오만무례한 간섭을 반대하고 배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미국과 남북대화 중 하나를 택하라는 식으로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대화의 조건 중 하나로 한·미(韓美) 합동군사훈련 중지를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다 중국마저 자신을 냉랭하게 대하자 대한민국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으려 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와의 대북 공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면서 어렵게 만들어진 남북대화의 기회를 살려 나가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떠안게 됐다.

남북대화가 시작되면 북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우리 정부의 5·24 대북 제재 해제 등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제재들은 모두 북의 도발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북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북 국제 공조와 남북관계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제 현실과 대북 공조를 무시한 남북대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통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북은 미국을 비방하거나 우리에게 엉뚱한 선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먼저 지난해 말 우리 측의 회담 제안에 응하는 것으로 남북대화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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