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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김정은 시대'가 본격 가동될 듯… 북한 붕괴나 흡수 통일은 非현실적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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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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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民間부위원장]

"YS '군사정권도 남북접촉했으나 문민정부가 더 잘한다'고 해…
北 NPT 탈퇴에 뒤통수 맞은 셈… 南北 관계는 현실대로 움직여야"

"카터 前 美대통령, 청와대 찾아 방북 당시 金日成 발언 전달
'김정일에 맡겨뒀더니 일이 이렇게 됐다' 하더라"

연말과 연초에 정종욱(74) 통일준비위원회 민간부위원장을 두 번 만났다. 마치 해(年)가 바뀌듯,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연말에 통일준비위원회가 제안한 '남북 당국자 회담'에 대해선 아직 답이 없다.

"김정은의 신년사가 답변 성격이 아닐까."

―답변이라기보다는, 남북 관계에 대한 통상적인 언급 아닌가?

"물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단된 고위급 접촉을 재개할 수 있다' '최고위급 회담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은 구체적이다. 이번 신년사에서 김정은의 스타일을 보여준 것이다. "

―김정은의 신년사가 발표되자, 통일부에서는 '당국자 회담부터 응하라' '가까운 시일 내 형식에 구애 없이 회담을 열자'며 그날 하루에만 두 번 성명서를 냈다. 너무 매달리고 서두른다는 느낌이 있다.

"그런 인상을 줬다면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분단 70년'인 올해가 중요하다. 그래서 강도를 높여 제의하는 것이다."


   
▲ 정종욱 부위원장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은 통일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대화의 전제가 '한미 군사 합동훈련의 중단'인데,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나?

"이는 북한에서 쭉 해오던 주장이다. 새로운 것은 '최고위급 회담'을 직접 언급한 대목이다. 북한의 대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해보는 게 중요하다."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 '함정론(최고위급 회담 언급에는 함정이 있다는 뜻)' '조급론'이 나오는데 그렇게 예단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북한이 훨씬 더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본다."

―지금 시점에 회담을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에 '탈출로'를 제공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평화·공존 통일을 추구한다면 북한을 코너로 너무 모는 것은 옳지 않다. 숨 쉴 구멍을 터줘야 한다."

―작년 초 경색 국면에서 북한이 '중대 제안'을 해왔을 때, 현 정권은 "믿을 수 없다. 술수가 뻔하다"며 거절했다.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당시 나는 '상대의 입장을 알려면 상대를 만나야 한다. 한 번 더 속는 셈 치면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정부도 대화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남북 관계에는 공개할 수 없는 미묘한 부분이 있다."

―현 정권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원칙을 내세워 '대화를 위해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를 요구해왔다. 그러다 보니 아예 만나기가 어려웠다.

"통준위 회의에서도 '신뢰 프로세스' 원칙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신뢰가 있어야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먼저 대화를 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조만간 남북이 회담 테이블에 앉게 될 것으로 보나?

"남북 관계는 낙관도 비관도 없다. 현실대로 움직여가야 한다. 이번에는 남북이 모두 '회담' 얘기를 꺼내놓았기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 북한의 상황도 작년에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 '3인방'이 왔을 때와는 달라졌다."

―이 3인방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당일 전격 방한했다가 12시간 만에 그냥 돌아갔다. 우리 쪽에서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다가 거절당했다. '허무 개그' 같았다.

"3인방의 전격 방문을 김정은이 결정한 것이다. 당시 북한은 인권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국면을 바꾸기 위해 김정은 나름대로 결정을 했다고 본다.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의 성적도 좋았으니 폐막식 기회를 잡은 것이다. 내가 듣기로, 폐막식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결정된 것 같다. 그러니 박 대통령과 만나는 것까지 신중하게 검토할 시간은 없었다. "

―사실 작년까지 '북한 급변 사태' 논의가 있었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보나?

"통준위는 북한 사태는 취급하지 않는다. 그걸 원치도 않는다. '흡수 통일'이 아닌 '합의 통일'을 전제로 작업하고 있다."

―원하고 원치 않고를 떠나 북한 권력 내부가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돼 있다고 본다. 이제 김정일 3년상(喪)이 지났다. 김정은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자신의 색깔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김정은의 지도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불안하게 보지 않는다."

―이 시점에 더 강한 압박으로 북한 붕괴를 유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북한 붕괴나 흡수 통일은 현실적이지 않다. 20년 전 내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김영삼 정부)으로 일할 때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지금보다 더했다."

―1994년 김일성 사후에 '북한 붕괴 시나리오'가 많이 나왔는데.

"김일성 생전에도 그런 예측이 있었다. 북한이 NPT(핵 확산 금지 조약)를 탈퇴하고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을 때다. 남북 접촉 회담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오자, 한쪽에서는 미국의 평양 폭격설이 돌았다."

―당시 극단적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은 YS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폈기 때문이었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내정된 뒤 상도동으로 김영삼 당선자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YS는 처음 보는 내게 '동지'라고 부르며 '군사정권에서도 남북 접촉을 했지만 문민정부가 더 잘할 수 있다. 내가 남북 관계를 뚫는데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런 YS 정부의 출범 직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의 송환 문제와 직면했다."

6·25 때 인민군 종군기자였던 이인모씨는 체포돼 7년형을 살았다. 그 뒤 전향을 거부하며 좌익 활동을 함으로써 모두 34년간 감옥에서 지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팔십 노인인 그의 소원대로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줘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됐던 것이다.

"청와대에서 해당 각료와 참모들이 회의를 했지만 '조건 없이 보내야 한다' '북한의 상응하는 조치 없이는 보내서는 안 된다'로 팽팽하게 갈렸다. 회의 결과를 그대로 보고하니 YS가 '그냥 보내라'고 했다.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인모 송환 발표'를 했다. 뭔가 북한의 화답이 있을 걸로 기대했다. 얼마 뒤 YS를 수행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내려가는 길에 '북한 NPT 탈퇴'라는 전갈이 왔다. YS로서는 뒤통수를 세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1년 8개월간 북핵(北核) 문제로 씨름하면서 전쟁 일보 직전 상황까지 갔던 셈이다."
 

   
▲ 북한으로 간 이인모씨가 김일성을 만난 장면.

―그런 상황에서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추진됐던 것으로 안다.

"당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했다. 김일성을 만난 카터는 판문점으로 내려와서는 헬리콥터로 갈아타고 곧바로 청와대에 왔다. 1994년 6월 17일이었다. 카터는 메모를 해온 수첩을 꺼내 '김일성이 이렇게 말했다'며 전했다. 그때 기억나는 것은 '내가 (김정일에게) 맡겨놓았더니 일이 이렇게 됐다'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남북 정상회담, 제네바 비핵화 협상 복귀, 영변 핵시설에 대한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수락 등 세 가지를 내놓았다. 전혀 예상 못 한 김일성의 '통 큰 결단'이었고 한반도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었다."

카터의 청와대 방문이 있고서 열흘쯤 뒤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 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그는 이홍구 통일부총리, 윤여준 총리특보와 함께 판문점에서 북측 대표를 만났다. 정상회담 시기와 의제가 합의됐다. 그런데 정상회담(7월 25일)을 앞두고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했다.

―역대 대통령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이를 성사시키려고 해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있은 뒤 10년간 남북 관계가 좋았던 게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3개월을 남겨두고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많은 것을 합의했지만 지켜지지 못했다. 정상회담은 절대 서두를 이유가 없다. 정상회담을 한다고 모든 게 풀리는 것도 아니다. 당국자 회담부터 차근차근 진행하면서 분위기를 성숙시키는 게 옳다."

―5·24(경제협력 제재) 조치를 풀어주느냐도 관건이다. 지금껏 우리의 입장은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북한과 대화를 하면 해법이 있다고 본다. 사과에는 여러 형식이 있을 수 있다. 우리 국민 정서도 엄격하게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걸 풀어줌으로써 남북 간 신뢰를 쌓는 돌파구가 마련된다고 판단된다면 말이다."

―그 사과 형식이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할 때 역풍이 심할 텐데.

"조건 없이 푸는 것은 안 될 것이다. 통준위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이제는 풀어야겠다'는 견해가 많다."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은 대북 제재 조치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국과 협의를 해야겠지만, 남북 간 대화를 반대하는 게 미국의 입장은 아니다. 지금의 갈등은 그동안 대화가 없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통준위에서는 조만간 '통일 헌장' 시안을 발표한다고 들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밝히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니, 공영(共榮) 통일, 평화 통일, 열린 통일이 3대 기조라고 했다. 뭔가 모호한 느낌이 든다.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기에 '통일 헌장'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사실 통준위 안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공청회를 열고 공론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작년 5월에 출범한 통일준비위원회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민간위원 30명, 정부위원 11명(장관 7명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국회의원 2명, 국책 연구 기관장 6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분명한 것은 '자유민주 체제'로 통일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통일을 '1국가 1체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 국가 안에서 자치적인 지방정부들이 운영되는 것처럼, 통일 개념과 형태도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열린 통일'이라고 명시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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