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 미·북 합의 지켰다면 쿠바보다 20년 먼저 고립 탈피
그러나 핵·미사일 역주행… 2014년엔 '최고 존엄 강박증'
이런 북을 상대하려면 현실적 치밀한 정책 고민해야

박두식 논설위원
박두식 논설위원
정확히 20년 전의 일이다. 1994년 12월 북한 외교관들이 워싱턴 DC를 찾았다. 이들이 어디에 머무르는지,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등등 모든 것이 비밀이었다. 그저 북한 대표단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려졌다. 북측 외교관들은 워싱턴 시내 중심의 듀퐁서클에서 매사추세츠 길을 따라 이어지는 워싱턴의 외교가(外交街)를 주로 돌아봤다고 한다. 당시 이들은 북한 외교 공관으로 쓸 만한 건물을 찾아다녔다.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만약에 일어났더라면' 하고 가정(假定)하는 것은 무의미한 공상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준(準)외교 관계 수립 직전까지 갔던 북한이 왜 막바지 고개에서 주저앉았는가를 따져보는 것은 지금의 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작업이다. 요즘 미국과 쿠바가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것이 세계적 뉴스가 됐다. 그러나 1994년 10월 타결된 미·북 제네바 합의에는 '양측은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하며,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며 장차 대사급으로 격상시킨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적어도 쿠바보다 20년은 앞선 셈이다. 북 대표단이 워싱턴을 찾은 것도 이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당초 미국은 북이 연락사무소 개설을 서두르는 상황을 걱정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동맹국인 한국의 반발이 컸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걱정은 기우(杞憂)로 끝났다. 북한은 집을 열심히 보고 나서 계약을 할 건지 말 건지에 대해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계속 댔다. 북은 그때나 지금이나 입만 열면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중단하고 관계개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랬던 북한이 막상 자신들의 요구가 현실에서 받아들여지는 결정적 순간에 이르자 멈춰 섰다.

1990년대 중·후반 미·북 관계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직접 평양을 방문하는 방안까지 검토됐을 만큼 극적인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했고, 김정일 정권의 2인자였던 조명록 차수가 백악관을 찾았다. 북한 고위 인사들이 미국 전역을 돌며 수해(水害) 피해 모금 활동을 벌였고, 미국 정부는 잦은 북한 대표단의 여행 경비 지원을 위해 일부 부처에 다른 명목으로 연구 용역비를 따로 책정하는 편법을 쓸 정도였다.

그때 그 기회를 살렸더라면 북은 쿠바나 이란보다 20년 먼저 미국의 적국(敵國) 리스트에서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은 말로는 미·북 관계 개선을 요구하고선 비밀리에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렸다.

돌이켜보면 북은 처음부터 미·북 관계 개선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같다. 바깥세상에 나설 생각도 없었고 그럴 준비가 돼 있지도 않았다. 북한은 토굴(土窟) 사회다. 북에는 땅 위의 건물 못지않게 지하에 많은 시설이 존재한다고 한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유사시 북한 권력자들이 중국으로 도주할 수 있는 지하 도로까지 파놨다고 증언했다. 이런 북한 권력층이 굳이 외부 세계와 통하는 작은 문(門)을 열어놓겠다고 나설 이유는 거의 없다.

북한 같은 사회에선 '우두머리'를 떠받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북한식 표현을 빌리면 김일성·정일·정은으로 이어지는 '최고 존엄'들이다. 2014년 올 한 해 북한은 줄곧 이 문제만 붙들고 늘어졌다. 지난 1월 느닷없이 대남(對南) '중대 제안'을 들고나온 것에서부터 9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불쑥 북한 실세(實勢) 3인이 나타난 것, 최근 김정은 암살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를 놓고 북이 발끈한 일까지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것이 '최고 존엄 떠받들기'다.

북한은 관료주의의 폐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곳이다.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 북한에서 올 한 해 줄곧 숙청이 진행됐다고 한다. 1년 전 사형을 집행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일파에 대한 색출·정리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부부장(차관)급 고위 간부들도 상당수가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었다. 장성택의 비중을 감안한다면 북한 엘리트의 다수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서른 갓 넘은 김정은의 즉흥성과 공격성에 모두 쩔쩔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1990년대 바깥세상으로 나올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던 북은 중국조차 가급적 눈길을 주지 않으려는 존재로 변했다. 세계가 북에 대해 관심을 갖는 유일한 이유는 같은 민족인 대한민국이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최고 존엄 강박증'에 빠진 북을 세계로 향하는 큰길로 끌어내는 것 역시 이제 우리의 몫이다. 북을 움직이려면 가장 현실적이고 치밀한 정책을 갖고 북을 상대해야 한다. 북에 대한 어떤 환상도 금물이다. 세밑에 정부와 통일준비위원회가 내놓은 종합 선물세트를 방불케 하는 대북 대화 제의를 보면서 부쩍 걱정이 커졌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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