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공통문화… ' 완간, 정의채 몬시뇰 인터뷰]
"침략 前科 선진국·피해 開途國, 다리 놓을 수 있는 건 우리뿐
北 '적화통일' 삭제 전 방심 금물… 정치권·관료 정신 못차려 딱해"
사실 이 길고도 어려운 제목 속에 그의 삶과 신앙, 지혜가 다 들어 있다. 세 번째 1000년대를 맞아 인류는 드디어 처음으로 공통의 문화를 갖게 되며 그 자체가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공통문화는 '공존(共存)' '공조(共助)' '공영(共榮)'이 핵심, 지각변동은 '사랑'이 일으키는 변화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함경남도 덕원신학교에서 광복을 맞고 이어 소련군 진주와 김일성 등장, 6·25, 피란지 부산에서의 첫 사목, 로마 유학, 그리고 산업화, 민주화를 모두 겪으며 1세기 가까이 살아온 노(老)사제의 경륜에서 우러난 혜안이다.
성탄절을 앞둔 23일 만난 정 몬시뇰은 "우리나라 방문 이후 교황님의 언행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쿠바 관계 개선 막후 활동이 단초를 제공한 듯했다. 그는 "요한 바오로2세가 1989년 10월부터 1990년 4월 사이 총 한 방 쏘지 않고 공산주의를 무너뜨렸듯, 지금 교황님도 큰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교황이 남긴 '일어나 비추어라'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와 민족에게 준 격려이자 사명을 일깨운 말"이라고 말했다. 정 몬시뇰이 보기에 우리는 새로운 1000년대 세계사의 주인공 자격이 충분하다. 식민지 출신 국가로 원조 수혜국(受惠國)에서 시혜국(施惠國)으로 갈아탄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은 침략 전과(前科)를 가진 선진국과 피침(被侵)의 상처를 잊지 못하고 불신과 피해의식을 깔고 있는 개도국을 이어줄 다리다.
"교황님의 '일어나 비추어라'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세계로 나아가라'고 권한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릅니다. 실력이 있을뿐더러 봉사·헌신할 줄 아는 세대입니다. 이들이 개도국에 흩어져 앞선 우리의 IT를 이용해 이끌어준다면 거기가 바로 우리 경제 영토입니다. 그 결과는 처음엔 눈에 뵈지도 않는 겨자씨일지 몰라도 이내 새가 앉을 수 있는 무성한 가지가 될 겁니다. 비좁은 국내에서 일자리 만드네 마네 하지 말고 자꾸 내보내야 합니다."
그는 오산학교가 있던 평북 정주(定州) 출신이다. 실향민이 대개 그렇듯 죽을 고비를 넘어 탈출했고, 남동생 하나는 못 내려왔다. 뼛속 깊이 공산당에 대한 원한이 사무칠 법하다. 그러나 그는 "평양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한반도) 북쪽에 있던 역대 왕조는 늘 중국 영향을 받았다. 대륙이 분열되면 기(氣) 좀 펴고, 통일되고 단단하면 고생했다. 중·소(中蘇) 갈등 땐 김일성이 큰소리쳤지만 지금 중국은 어느 때보다 단단하다."
정 몬시뇰은 하지만 "북한 인권은 꼭, 언제나 지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강령에서 '적화통일'을 삭제할 때까지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저들은 핵무기를 반드시 쓴다는 가정하에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단 한 번이라도 사제로서 미사를 봉헌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했던 정 몬시뇰. 요즘 그의 걱정거리는 위정자와 정치권, 관료 조직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무능하고 해이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계사 주역이 될 절호의 기회이긴 하지만 그 기회가 거저 오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