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며칠 전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전 대표는 해산을 청구한 정부를 향해 "통일의 뿌리를 뽑아내려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북한을 방문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종북(從北) 토크쇼' 논란을 일으킨 재미 동포 신은미씨는 자신의 언행이 통일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들은 북한 체제를 두둔하면서 통일을 운위하면 종북통일론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러는 것일까?

한국에게 통일과 상생(相生)은 '두 마리 토끼'다. 통일은 분단국 한국에 숙명적 과제이고, 남북 상생 또한 현실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통일과 상생을 동시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통일로 가는 길은 북한 체제가 변화하거나 붕괴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상생을 위해서는 주권적 실체로서의 북한 정권과 체제를 인정하고 화해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즉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대화와 협력의 상대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숙명이다.

하지만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인사가 통일 담론을 주도하면서 상생론이 통일론으로 둔갑되는 혼란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논지는 "북한 체제를 존중하여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야 하고 그래야 평화 통일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그래야 평화 통일이 가능해진다"는 부분은 가짜 통일론이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협력 관계를 도모하는 것은 상생을 위한 것이지 통일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남조선 혁명을 통한 주체 통일'을 추구하면서 여기에 반대하면 반(反)민족 범죄로 엄벌하는 북한 체제를 굳혀주는 것은 적화통일에 도움이 될지언정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돕는 길은 아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나 신은미씨는 이 논리정연한 진리를 회피하지 말고 어떤 통일에 기여하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상생론을 통일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세 부류다. 첫째는 그럴듯한 논리에 속아 그렇게 믿는 우둔한 사람, 둘째는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속한 단체나 정당 속에서 상생론을 통일론으로 둔갑시켜온 뻔뻔한 사람이다. 셋째는 북한 주도 '주체 통일'을 원하거나 한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영악한 사람인데, 이들에게 정치적 생존 공간을 제공해준 것은 우둔한 유권자와 이를 이용해온 뻔뻔한 사람이었다.

영악한 사람은 우둔한 유권자와 뻔뻔스러운 전문가와 정치인을 믿고 헌법을 기만하는 가짜 통일 노래를 불러대고 있다. 인권 개선, 민주화, 복음화 등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 애쓰는 진짜 통일 일꾼들을 '반(反)통일 수구 세력'으로 매도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이들의 전문 영역이다. 그러나 논리정연한 통일의 진리를 꿰뚫고 있는 국민도 많다. 적어도 이런 국민의 눈에는 지금까지 저질러온 반(反)국가적 언행을 반성하지 않고 역공을 펼치려고 발버둥치는 일부 통진당 잔류 세력의 모습이 무척이나 가소롭게 보일 것이다. "통일에 기여하려는데 왜 '좌빨'로 모느냐"고 항변하는 신은미씨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북한이 원하는 '쓸모 있는 바보'를 자처한 철부지 여성의 대책 없는 노이즈 마케팅일까, 종북 세력이 부르는 영악한 통일 노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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