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진보 성향 인사들이 22일 '원탁회의'를 열어 "통진당 부활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국적 국민운동 조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동안 선거 연대(連帶)를 비롯해 야권에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장외(場外)에서 훈수를 둬온 사람들이다. 이번엔 야당에 '통진당 지킴이'로 나서라는 압박을 시작한 셈이다.

헌재가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핵심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민주주의 원리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자주파 출신 당 주도세력이) 비례대표 부정 경선(競選),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등을 통해 토론과 표결에 기반을 두지 않고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으로 후보의 당선을 관철하려 함으로써 선거제도를 형해화(形骸化)하려 했다"고 구체적 근거까지 들었다.

이른바 '원탁회의'를 만든 사람들은 그동안 입만 열면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양심세력"이라고 자랑해 왔다. 그렇게 민주투사를 자임(自任)해온 사람들이 통진당 세력의 비(非)민주적 폭력과 부정, 불법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입을 닫아 왔다. '원탁회의'가 진짜 민주화 양심세력이라면 통진당 사람들이 폭력과 부정을 저질렀을 때 꾸짖었어야 했다. 민주주의를 짓밟은 통진당의 잘못에는 침묵해 놓고 헌재 결정 이후 통진당을 되살리는 명분으로 '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우는 건 자기모순이자 자기 부정(否定)일 뿐이다.

이런 장외 나팔수들을 의식했는지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이날 "내려진 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면서도 "헌재는 더 신중해야 하고 정치적이어선 안 된다"고 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헌재 (재판관) 구성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왔다.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왔을 때만 해도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더니 사흘 만에 헌재 비판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다. 심지어 야당 지도부인 인재근 비대위원과 정동영 전 대선 후보는 아예 '원탁회의' 제안자 11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새정치연합은 2년 전 총선에서 '야권 연대'를 통해 통진당이 국회에서 13석(席) 의석을 얻을 수 있게 해줬다. 통진당 이석기 세력은 이 힘을 바탕으로 국회에서 합법적으로 '북한 노동당 2중대'처럼 행동하다가 적발됐다. 통진당이 당 출범식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을 정도로 반(反)대한민국 행각을 보였는데도 새정치연합은 이를 모른 척하며 총선 등에서 통진당과 어깨동무를 하기에 바빴다. 그러니 새정치연합이 '종북(從北) 세력의 숙주(宿主) 노릇을 했다'는 비난을 듣는 것은 스스로 불러온 결과다. 새정치연합은 이런 통진당과의 야권 연대를 통해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몇 석을 건졌는지 몰라도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 등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선거의 판세를 그르쳤다. 새정치연합 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만든 총선 패배 보고서에도 "종북·좌파 등의 문제가 있는 (통진당 등) 진보 정당과 차별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적혀 있다.

통진당과 손잡는 걸 주도했거나 적극적으로 거든 사람들은 야당 지지자를 비롯한 국민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그런데도 당 대표를 비롯한 당시 야당 지도부는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다. 당 상임고문으로 야권 연대를 채근했던 문재인·이해찬 의원은 오히려 통진당 해산 결정을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 "끔찍한 일"이라며 헌재를 상대로 삿대질을 하고 나섰다.

야당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통진당 지지 세력의 도움을 기대하고 말고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지난 주말 두 여론조사에서 '통진당 해산' 찬성 의견이 60%를 넘었다. 국민의 다수가 종북 세력과 다시는 연대하지 말라는데도 야당이 이를 무시하고 다시 장외의 '사이비 훈수꾼'들에게 휘둘린다면 그것을 누가 말리겠는가. 분명한 것은 그럴수록 야당의 재집권 꿈이 더 멀어질 뿐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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