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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극 <공무도하>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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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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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는 진하고 진한 인생의 한이 담겨 있어서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미묘함이 신기하다”고 하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그 말의 의미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가슴 한쪽이 아직도 저릿저릿하다. 언젠가 내 생의 어느 소중한 부분을 잃었다는 아픔으로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던 기억은 있으나 영화나 연극이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러한 감정의 전이를 느꼈던 기억이 없다. 가끔 아주 드물게 소설을 읽으면서 한두 번 내가 그 사람이 되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있어도 눈물 없이 가슴의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없다. 그것은 완전한 감정의 몰입이었다.

무대의 불이 꺼지고 우리의 음악 국악 연주가 시작된다. 한편에서 울려오는 전자기타 소리에 어우러지는 대고의 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운다. 비 오는 어느 날의 절집에서 들었던 대고 소리를 연상시킨다. 차일이 쳐진 대웅전 앞마당에 울리던 대고 소리는 빗소리와 함께 온 산을 흔들고 있었다. 대고가 아니면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리의 큰 울림이었다. 그 울림을 따라 오늘의 설렘이 시작된다.

   
 

고전이란, 더구나 구전 시가란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고전을 공부하면서 알았다. 고전은 저 홀로 뜻을 세울 수 있는 독립적 개념이 아니라 언제나 현대와의 대립적 관계 속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대적 개념이다. 오늘에서 바라보는 옛날이라는 뜻을 시간의 개념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5~26개의 작품만 남아있는 향가와 그 이전에 고조선부터 내려오는 구비문학도 수를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만의 감정 체계로서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현대 이전에 남겨진 모든 노래를 고전 시가라는 명칭을 붙여서 옛날 노래라고 이해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문학 장르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노래들을 상대 시가로 칭하고 있으며 상대 시가로 꼽고 있는 <공무도하가>의 국악극을 현대어와 현대의 시점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公無渡河 (그대 강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그대 기어이 건너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죽으니)
當奈公河 (그대를 어이 하리)

현존하는 상대 시가 중의 하나인 공무도하가의 역사적 의미의 중요성을 떨치고 바라보는 오늘의 공무도하가는 이승과 저승,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삶의 한 모습이다.

   
 

나로부터의 이별. 40의 세월을 살다가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잊어 가는 현실의 시간들은 우리 자신이 잊고 싶은 나의 모습임을 생각하며 전생을 향하여 시간의 강을 건넌다. 잊고 싶은 기억을 던지고 방황하는 영혼을 바라보는 현실의 아내와 기다림이 그리움으로 변하여 그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잠이 드는 전생의 아내가 부르는 노래는 가슴을 내내 때리고 있다.

죽음 저편의 세상에서 만나는 남편의 모습이 무대를 가득 메우고 현실의 아내는 남편을 바라본다.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에서 다가오는 죽음의 문제는 수수께끼 같은 의문으로 남겨지고 삶과 죽음의 강을 사이에 두고 떠도는 영혼은 신화적 인간으로서의 초월적 죽음으로 형상화된다. 백수광부의 신화적 죽음과 아내의 경험적 죽음 사이에 놓여 있는 이중적인 전환과 우리 정서가 지니고 있는 한의 표현을 노래와 춤으로 서정화한 무대는 막을 내린다.

사랑 찾아 깃발 들고 가리라. 무대의 막이 다시 오르고 남과 북의 현실에서 만나는 두 남녀의 애정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인으로 하여 현실의 사랑이 아닌 신화적 존재로서의 여인의 모습으로 남는다. 그는 아내라 칭하고 있지만, 아내와 남편이라는 부부의 개념은 상대적인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나의 생각에 그녀는 현실에서의 대상이 아닌 상징적인 존재로서의 대상으로 남는다.

인간이 거쳐야 하는 성숙의 단계로서 거부하지 못하는 운명으로 만나는 하나의 과정이다. 일상에서 가슴에만 품고 살아가는 사랑을 찾아가는 시간의 여행으로 우리가 모두 지니고 있는 인간 원형의 모습으로 나는 여행이라 부르고 싶다. 인생의 길에서 만나는 사랑에 존재하는 허령(虛靈)이다. 무엇에도 저당 잡히지 않는, 무언가에도 구속되지 않은 빈 마음의 상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오로지 사랑이라는 순수의 개념 속에만 존재하는 가능성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는 일이라 노래하였다. 소설가 김하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현실과 고전의 세계를 함께 어우르는 춤과 노래의 무대였다. 삶의 곳곳에 스며 있는 시간의 주름 사이를 누비면서 그 아픔들을 노래와 춤으로 승화시키는 우리의 정서가 가슴 깊숙하게 가을 바람 소리처럼 자리한다.

<삼국유사>나 <가락국기>에 나오는 최고의 시가로서 2세기 후반 채옹(蔡邕)이 편찬한 금조(琴操)에 가사가 전해지고 있는 공무도하의 원형은 북방까지 닿아 있던 한반도의 역사로 무대의 장소는 북한에서 연변까지 이어진다. 현실과 이상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그들에게 다가오는 현실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만나는 전통의 소리극으로 삶의 내면을 보이면서 열리고 있다.

공무도하에는 3음보의 음악 체계 속에서 판소리에 정가 풍의 공간성을, 그리고 서도민요의 가을 소리에 내재된 삶의 형태가 감정이입을 시키면서 마음을 흔들었던 시간이었다. 단순한 판소리가 아니었으며 단순한 우리 국악의 원형이 아니었다. 국악이 전해주던 가을의 바람 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구름 같은 북소리에서 자연을 순리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지니고 있는 한의 시간을 바라본다.

이윤택 감독이 말하고 있는 시 짓기의 감성이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었다. 땅 위를 걸어가는 알바트로스가 아닌 예술의 세계에서 창공을 가르는 아름다운 비상이었다. 무대 위에서 펼쳐가는 환상의 날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무한대의 상상력으로 신화 속의 세계를 넘나든다.

전통을 향하여 현실을 뛰어넘는 날개를 펼치고 있는 알바트로스들을 향하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던 시간이다.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에서 만나는 우리 문화의 정서가 어느 날의 대고 소리와 겹쳐지면서 떠나가는 나의 가을을 흔들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림을 시작하는 서도민요 가락에 나의 장구 소리가 박자를 맞출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요즈음 작은 소망이 되어 있던 시기에 만난 우리 국악극이다.

나의 북소리가 강을 건너는 그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장구 소리에 내 영혼을 실어서 들려주고 싶어지는 작은 소망이 하나 더 보태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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