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핵(核)태세검토’ 보고서는 보도된 내용대로라면 미국이 핵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보고서의 핵심적 내용은 미국의 잠재적 핵공격 대상국으로 북한·이라크·이란 등 이른바 ‘악의 축’ 3개국을 포함한 7개국을 거명하고 있으며, 특정한 전장(戰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더욱 정교하고 작은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은 “핵무기의 존재 이유는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개념을 흔들면서 실전에서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미국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공격을 받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소극적 보장(negative assurance)’ 정책을 탈피하고 ‘적극적 선제공격체제(offensive strike system)’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 행정부는 이 보고서의 파문을 진화하려 애쓰면서 기존 핵무기정책은 불변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보고서 내용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핵정책은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인 만큼 미 행정부의 의도와 움직임을 현 단계에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는 어떤 명분으로든 어떤 규모로든 한번 사용하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불러 온다는 점에서 핵무기 사용의 문턱을 낮추는 일만은 삼가야 할 것이다. 더구나 미국이 새로운 소규모 핵무기 개발에 나선다면 이는 미국이 그토록 방지하려고 애써온 핵확산을 부채질할 우려가 크다.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핵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이며, 경수로 건설과 관련해 북한에 대한 핵사찰 문제가 당장의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다. 한반도에 핵 위기가 고조되지 않도록 정부는 섬세하고 정교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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