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문화부 차장
김성현 문화부 차장
학생운동 진영에 1992년 대선이 있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학생운동 진영은 두 갈래로 나뉘어 두 후보를 지지했다. 한 명은 당선에 실패했고, 다른 한 명은 기대했던 득표수에 못 미쳤다. 대선 투표 직전 유력한 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학생운동 주류는 선관위와 별개로 자체 집계를 하겠다며 개인들의 컴퓨터를 전국 각지 개표소로 보냈다. 선거 부정을 감시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부정도, 승리도 없었다.

대선 직후 선배 손에 이끌려 이웃 대학에서 열린 비공개 집회에 참석했다. 서울 남부 권역 대학 캠퍼스의 학생운동 주류 세력이 중심이 된 '애국자 대회'였다. 나라 사랑이 무슨 죄가 되겠느냐마는 문제는 그 애국의 내용이었다. 대선 평가와 향후 투쟁 계획을 공유하기 위한 집회에서는 노골적 반미(反美)와 친북(親北) 발언이 쏟아졌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그들이 사랑하는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심리와 소위 '종북(從北) 콘서트'를 둘러싼 논란을 보다가 22년 전의 겨울 풍경이 떠올랐다. 일반적 상식으로 통진당 측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들의 수사(修辭)가 여러 겹으로 층층이 둘러싸인 양파 껍질과 같기 때문이다. 겉면에는 통일과 애국이 있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명제지만 그 껍질을 까는 순간 자주(自主)와 반미(反美)가 튀어나온다. 북한은 자주적인 반면 한국은 미국에 종속적이고 사대주의적이라는 비판이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동의하면 그다음 껍질인 친북까지는 그야말로 한달음이다. 북한이 자주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김일성 부자(父子)의 지도력 덕분이며 한국은 반(反)통일 세력의 집권으로 외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양파 껍질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북한의 지도 이념인 주체사상 신봉과 김일성 부자에 대한 찬양이 기다린다. 종북에서 반북(反北)으로 발길을 돌린 이들이 목청을 높이는 것도 양파 껍질을 깔수록 맵고 따갑고 쓰라리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타도해야 할 대상이 눈앞에 있었던 군부 독재 시절에는 '적(敵)의 적은 친구'라는 등식이 학생운동 진영을 지배했다. 한국 군부가 적이라면 그 '적의 적'인 북한은 협력과 연대, 나아가 추종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민주주의가 안착하고 북한은 3대 세습의 봉건 왕조로 전락하는 동안에도 이념적 착시는 멈추지 않았다. 이념이 현실을 앞서거나 전도(顚倒)되는 순간 그 이념은 종교가 된다. 통진당 부류의 언술이 사교(邪敎) 집단과 닮아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헛된 구원과 거짓 믿음을 강요하는 집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비난이 아니라 싸늘한 무관심과 침묵이다. 종북 집단도 마찬가지다. 응대해줄수록 그들은 더욱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는 사실을 소위 '종북 콘서트' 소동에서 확인하고 있다. 20년 전 느꼈던 환멸이 되살아난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