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박·준비論 무성하나 단계·실용적 對北정책 절실
中·日과 균형외교 없으면 동북아 평화 협력도 공허
상대방 호의 기다리지 말고 먼저 대화 주사위 던져야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의 외교 무대는 국제적이지만 그 요체는 동북아에 있다. 통일 대박론,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모두가 동북아를 바꾸어보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구체적 전략들은 미완성품이다. 각 부서가 추진하는 개별 전략들이 조정되지 않은 채 각개약진하고 있는 느낌이다. 전체 전략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손도 없어 보인다.

통일 대박론과 통일 준비론이 무성하다. 언젠가 우리도 모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통일을 미리 준비하는 건 맞다. 통일은 분명 우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이자 종점이다. 통일은 오기만 한다면 대박이다. 하지만 통일 준비론이 선행하는 와중에 통일을 언제 어떻게 이루겠다는 과정론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났다.

통일은 우리만 믿고 기다린다고 찾아와주지 않는다. 통일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통일을 어떤 방법으로 이루겠다는 현실주의적 처방이 없다면 정책으로서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권 초기에 회자하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단계적·실용적 대북정책을 다시 한 번 챙겨 볼 때다.

'아시안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으로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을 외교 화두로 던졌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동북아 국가들의 관계가 복잡하다. 동북아의 한 축인 일본과는 끊임없는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한·중 관계는 호전되었지만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중국·일본과 동시에 우호 관계를 만들기 위한 실천 전략이 없는 한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은 공허한 대외용 선전 구호에 불과하다. 중국·일본과의 균형 외교, 한·일 관계의 반전, 한·중·일 3국 협력의 고양이 없는 한 동북아 평화 협력은 중국에 편향된 비대칭 외교일 따름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실현할 수만 있다면 동북아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북한이라는 블랙홀을 다룰 치밀한 전략과 끈질긴 협상이 필요한 과제다. 대북 전략과 동북아 전략은 서로 엮여 있다.

현 정부의 외교 목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교 전략의 구체성·적극성·상호정합성이 더욱 제고되어야 한다.

우선 단기 전략과 중장기 목표는 구분되어야 한다. 남북한 통일이나 동북아 평화 협력은 한국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장기 목표들이다. 하지만 그런 이상에 접근해 가는 구체적 행동 계획이 병행되어야 구호에 힘이 들어간다. 통일 대박이라고 외치며 우리만 준비하기보다는 북한을 끌어당기며 통일을 앞당길 통일 실천 전략이 절실하다.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을 논하기에 앞서 한·중·일의 흐트러진 신뢰를 어떻게 복원하느냐를 먼저 고민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중·일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음으로는 위험을 회피할 과제와 위험을 감수할 과제를 구분해서 다루어야 한다. 외교적으로 어려운 상대들을 다루면서 대화를 거부하는 피동적 전략이 앞서는 한편 대화를 준비하기보다는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세우기 위한 공세적 고립 전략이 눈에 띈다. 대화 자체를 위험으로 여기지 말고 대화 과정에서 올 수 있는 위험을 회피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일본은 믿을 수 없다고 회피하기보다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북한이 우리를 속일지 모른다고 우려하지 말고 그들을 우리의 전략에 맞춤형으로 불러내는 여유와 대범함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호의나 선행 조치에만 기대를 걸지 말고 우리 편에서 먼저 대화와 협상의 주사위를 던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개념과 구호라는 대의명분의 공유도 중요하지만 외교 안보 부서 간, 부처와 청와대 간, 청와대 내 참모와 지도부 간의 개방적 대화가 촉진되어야 한다. 소통과 토론이 부재한 문서만의 보고로는 속내를 드러내는 깊은 전략적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원탁의 기사들처럼 자유롭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상호 교감 속에서 내린 결론은 중시하는 개방성이 있어야 외교 전략의 현실성이 높아질 것이다.

외교 상대방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보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 때다. 외교는 개념의 나열이어선 곤란하다.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생활에 직결되고, 공동체의 장래가 달린 일이라는 실용주의의 잣대가 우선되길 기대한다.

2015년은 경제·외교 양면에서 커다란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2014년을 마감하면서 한국 외교의 원점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손에 잡히는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차근한 새해 준비를 기대한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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