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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탈북민 잇는 다리 되길"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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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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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나은미래·더퍼스트 공동기획] [숨은 영웅을 찾아서] (2)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
10년전 탈북청소년 10명과 함께 시작… 자격증 취득·문화교육·현장학습 수업
대학 진학보다 친구 찾기 중심
시간표·행사 등 전 과정 지역과 소통… 늘 "떳떳하게 출신 밝혀라" 강조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스쳐간 사람을 3년 뒤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탈북 청소년 박상영(52) 셋넷학교 교장 이야기다. 1999년 중국 용정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던 박 교장은 난생처음 북한 아이들을 만났다. 가진 돈을 다 털어주고 "잘 살아야 한다"며 작별인사를 건넸는데, 3년 만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 앞마당에서 그들과 재회했다. 고생 끝에 남한에 온 만큼 잘 지낼 줄 알았던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좀체 행복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10여 명의 탈북 청소년을 데리고 주말마다 온 동네를 쏘다녔다.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예술도 배우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안교육이 장소를 갖추고 커리큘럼을 만들면서 '셋넷학교'가 됐다. 올해로 딱 10년이다.

   
▲ /조철희 더퍼스트 기자

◇탈북 청소년 생존 위한 '선택 교육'

여의도의 유명 증권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박 교장은 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한 번뿐인 인생을 돈보다 가치 있는 일에 쓰자'는 결심 때문이었다. 6개월간 가족을 설득한 끝에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문화교육운동을 시작했고, 1995년에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 배움터 '따또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2004년, 중국 용정에서 만난 탈북 청소년들과의 인연으로 셋넷학교를 시작했다.

"우리는 선택의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결혼이나 학업, 직장에 대한 고민을 하죠. 그러나 북한에서는 당이 모든 걸 결정합니다. 탈북 청소년들은 언어가 통하니 좀 더 살 만하겠다고 우리나라에 왔다가 영어보다 더 어려운 선택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사회에서 선택은 생존의 문제인데, 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줘도 해석하지 못하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태죠."

박 교장이 찾은 돌파구는 '지역사회'와 '진로'였다. 그는 충분한 준비가 없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4년제 대학 입학 추천서를 써 주지 않는다.

"셋넷학교를 거쳐 간 150여 명의 아이들 중 90% 이상은 대학 진학을 원했어요. 특례입학제도나 등록금 지원만 보더라도 탈북 학생들을 상급 학교로 진학시키겠다는 정부 의지가 보입니다. '남한에서는 대학에 가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주변 분위기도 진학을 부추깁니다. 하지만 탈북 청소년은 남한에 오기까지 교육 공백이 있기 때문에 기초 학습 능력을 쌓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어떤 전공을 배워야 할지 충분한 정보나 고민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입학을 지원하는 것은 이미 상처 입은 아이들을 두 번 낙담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 진학 후 중도탈락한 아이들 대부분은 관계를 끊고 잠적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낙오를 알리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인 셈이다. 이름을 바꾸고 수도권에 있는 기숙 공장에 취직하거나 아예 남한에서의 정착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다. 브로커는 "선진국에서 정착금을 받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아이들을 유혹한다.

   
▲ 셋넷학교 제공

"2008년 영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탈북자 지문 정보를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 남한에 한 번 정착해 난민 신분을 상실한 이들을 찾기 위해서죠. 아이들은 강제 송환이 두려워 영국 전역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탈남 아이들의 현실을 보기 위해 오원환 감독, 셋넷학교 졸업생 김하늘군과 함께 런던에서 스코틀랜드 스카이섬까지 이동하며 로드 무비 '루트리스(rootless)를 제작했습니다."

그는 21세기 집시가 되어 전 세계를 떠도는 탈남 청년들을 보며 '탁상행정'의 한계를 절감했다. 3년 전, 셋넷학교를 강원도 원주로 이전한 것도 새로운 교육 실험의 시작이었다.

"5년 전 부모님과 누나를 두고 홀로 탈북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매일 술을 먹고 싸우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해요. 그러다 셋넷학교에 들어왔고 원주에서 중장비 자격증 6개를 취득했어요. 젊고 능력 있는 일꾼이 부족한 지역에서 이 친구의 경쟁력은 남달랐죠. 스물다섯 살에 운수회사 정비 관리직에 채용되면서 아예 원주로 이사까지 했습니다. 같은 회사 택시 기사님들이 '성실하고 일 잘하는 친구'라고 온 동네에 소문을 내주고 있어요. 이 애가 바로 지역사회와 북한 이탈 주민 사이에 다리를 놓는 통일 외교관인 겁니다."

박 교장의 교육 철학은 강원도를 중심으로 조금씩 번져가고 있다. 지난해 춘천에 문을 연 '두드림 아카데미'는 10대 후반~20대 탈북 청년들을 위한 직업사관학교로, 기획 단계부터 박 교장의 컨설팅을 받았다.

셋넷학교의 커리큘럼은 4개월을 한 학기로 하는 1년 3학기제로 운영된다. 개인 차는 있지만 졸업까지는 보통 중등 1년, 고등 1년, 미래준비반 1년 총 3년의 시간을 잡는다. 1~4월은 국어,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한 기초학습, 5~8월은 직업 적성 및 IT 교육, 9~12월은 자격증 취득을 비롯해 문화예술교육과 현장학습을 한다. 연극 공연을 통해 자기표현에 서툰 아이들이 자존감을 갖도록 하고, 여행을 통해 '길 위에서의 배움'을 시도한다.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것을 직접 고르고, 등교시간도 합의해서 결정한다. 이 과정에만 꼬박 2주가 걸린다. 10명 안팎의 학생이 있는 작은 규모이지만, 과목당 3~4명의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있다.

셋넷학교의 특별함은 이 모든 과정을 지역사회와 소통한다는 점이다. 시간표도 공개하고, 트위터와 유튜브 등 SNS도 적극적으로 운영한다. 연말 공연이나 작은 파티 등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도 많다. 박 교장은 주민들에게 셋넷학교 학생들과 접촉할 창구를 열어주고, 아이들에게 "네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당당하게 말하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너희 부모님의 말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함경도 말도 경상도, 전라도 말과 같은 사투리일 뿐입니다. 무조건 '잊어라' '고쳐라'고 하는 건 폭력이에요. 학생들이 자기 삶의 기억을 존중받고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야 건강한 현재를 살 수 있습니다. '나는 북한 사람'이라고 할 필요 없어요. 우리도 '나는 남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회령에서 왔다' '백두산 밑에서 왔다' 떳떳하게 출신을 이야기하면 되는 거예요. 과거를 잊은 사람은 미래를 꽃피울 수 없습니다."

이처럼 차별화된 교육 시스템은 10년간 이들을 지탱해준 300여 명의 풀뿌리 후원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종교 색도 없고, 특정 단체에서 전적인 후원을 받지도 않는다. 기부 단체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교육 과정에 한계를 갖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셋넷, 앞으로의 10년은 '통일준비학교'

지난달 25일, 셋넷학교의 10주년 행사에서 박 교장은 "지난 10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2000년대 우리나라에는 밀려오는 탈북자를 받아들일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셋넷학교는 말하자면 그 아이들을 위한 긴급 시설이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전국적으로 더 많은 시스템과 시설이 생겨났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새로운 고민을 하고자 합니다."

그는 통일을 70년간 미뤄온 시험에 비유했다. 중간, 기말고사를 한 번 보려고 해도 한 달 전부터 준비하는데, 70년을 미뤄온 통일에 앞서 연습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곁에 와 있는 2만7000여 명의 북한 이탈 주민과 더불어 사는 삶이 우리에게는 바로 통일 예행 연습입니다. 국가의 결합은 정치·경제의 논리에서 풀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돈이나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화적 소통에는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지요. 앞으로의 셋넷학교는 원주라는 지역사회 안에서 통일을 대비해 또래의 남북한 아이들이 어떻게 함께 놀고, 이야기하며 바라봐야 하는지 준비하는 곳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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