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가 이란·이라크·북한·리비아·시리아·중국·러시아 등 7개국에 대해 유사시 핵무기 사용계획을 담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당사국들은 크게 반발했으며 미국의 동맹국들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미 부시 행정부는 보고서의 파장을 진화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10일 미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중동 사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

◆ 당사국들 반발 =모하마드 하타미(Khatami) 이란 대통령은 10일 “미국은 자진해서 최악의 전쟁에 연루됐다”고 비난하고, “역사는 누가 대화를 증진시켰고 누가 폭력을 불러왔는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dpa통신은 보도했다. 하타미 대통령은 자신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문명간 대화를 제창한 점을 상기시키고, 미국은 과거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비롯해 독재정권을 위한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다고 비난했다.

하셰미 라프산자니(Rafsanjani) 전 이란 대통령도 “미국의 핵사용 계획은 미국이 세계에 중대한 위협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은 특정국가들에 핵무기 위협을 가함으로써 그들이 굴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 타임스는 “미 행정부가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세계를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정부는 10일 침묵을 지켰으나, 정부 밖에서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러시아 국방부 국제협력국장을 지낸 군장성 출신의 레오니드 이바쇼프(Ivashov)는 “러시아 정치인들은 이제 미국이 러시아의 번영을 바란다는 환상을 버려야할 때”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드미트리 로고진(Rogozin) 의원은 NTV방송에 출연, “미국은 미·러 관계가 경색된 시기에 러시아를 겁주려고 고의로 이같은 정보를 언론에 누설했다”고 비난했다.

리비아의 알-살람 알-투리키(al-Turiki) 아프리카장관은 10일 “그같은 보도가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세계를 파괴하려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미 동맹국인 영국 외무부는 미국의 그같은 계획을 “일상적인 군사계획이며 특정한 공격계획은 아니라고 본다”고 의미를 축소했으며,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마르티노(Martino) 국방장관도 ANSA통신과의 회견에서 “군은 때때로 가설이라 할지라도 장기 계획들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대변인도 10일 “논평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밝혔다고 AP는 전했다.

영국 자유민주당의 멘지스 캠블(Campbell) 대변인은 “미국의 이번 계획은 핵무기 억제에 관한 논쟁의 조건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면서 “영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지원 여부를 매우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 행정부의 진화 =부시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10일 미국과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예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이것이 핵정책의 변화나 실행계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콜린 파월(Powell) 국무장관은 CBS 방송에 출연, “현재 일상적으로 미국 핵무기의 겨냥을 받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없다”면서, “우리는 새로운 핵 무기를 개발하지도 않고 있으며 어떠한 (핵무기) 실험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소규모 핵무기 개발 및 핵 무기 실험 재개 계획을 부인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건전한 미국 행정부의 개념상 계획으로 국제사회를 화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Rice) 국가안보 보좌관도 NBC 방송에 출연,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과 일부 국가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경우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은 대통령이 선택한다는 것이 미국의 전통이라는 점은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 모두는 핵 무기를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에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파멸적인 대응이 있을 것이란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마이어스(Myers) 합참의장은 CNN에서 “이번 보고서가 계획(plan)은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미국과 우호국, 동맹국들이 핵무기, 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공격받을 경우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보존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 李庸舜기자 ysrhee@chosun.com
/ 워싱턴=朱庸中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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