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얼마 전 금융위원회는 향후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어떤 금융 수요가 발생할지 예상하면서 그 수요를 충족시킬 대안을 제시했다. 요즘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매우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과제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위가 이런 중장기적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통일이 될 경우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 중 하나는 남북 간의 심한 소득 격차를 줄이는 일이다. 금융위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현재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250달러로 2만6000달러인 남한의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남북의 심한 소득 격차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통일도 허사가 될 수 있다는 금융위의 판단은 매우 올바르다.

구체적으로 금융위는 이런 소득 격차를 줄이려면 통일 후 약 20년에 걸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최소 1만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약 500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그 재원을 남한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등을 담보로 하여 외국인 투자와 차관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 역시 여러모로 좋은 발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 가지 금융위가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런 외국 투자와 차관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국내적으로 먼저 여러 정책 개혁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개혁 중 핵심은 원화(貨)의 국제화이다. 지금처럼 원화가 국제화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원화를 담보로 해외 자금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에 필요한 재원을 외화로 확보하는 데 많은 비용과 제약이 따른다. 반대로 원화가 국제화되면 원화를 담보로 해외 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여러 이점이 생긴다. 예컨대 원화가 국제화되면 외화를 빌려야 할 수요도 줄거니와 국내 외환시장이 커져 외화를 안정적으로 빌릴 수 있고 비용도 크게 감소한다. 이에 더해 국내 금융기관도 원화 자금을 기반으로 북한 투자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통일에 소요되는 외화 자금도 크게 줄어든다.

원화의 국제화는 이렇게 통일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경제 전반의 발전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위를 포함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우리나라의 통화정책 당국은 아직도 원화 국제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인즉 원화를 국제화하는 데 새로운 큰 힘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일찍부터 우리 정부는 원화의 국제화를 위해 모든 대외 자본 거래의 자유화를 2009년 말까지 완료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10월 이명박 정부가 당시 경제 상황에 대한 그릇된 판단으로 이 정책을 무기한 연기했다.

따라서 그 정책을 지금이라도 다시 추진하면 우리 원화도 미국·유럽·영국·일본·캐나다·호주·스위스 통화처럼 단시일 내에 국제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의 실현도 앞당겨질 수 있고, 통일도 지금 생각하는 것 이상의 대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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