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고려문화경제연구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 한국 한중미래재단 이사장
베이징고려문화경제연구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 한국 한중미래재단 이사장
지금 한국엔 이석기와 RO·통진당에 대한 심판의 시각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심판 선고가 이달 안에 내려질 전망이다. 이 문제의 시비는 무산계급폭력혁명이념(이하 ‘폭력이념’으로 약칭)의 산생→발전→쇠잔(衰殘)→소멸의 전반 과정을 거시적으로 관찰하면 매우 뚜렷하다.

1848년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 처음 등장한 폭력이념은 레닌이 1917년 <국가와 혁명>에서 ‘무산계급국가가 자산계급국가를 대체하는 데는 폭력혁명으로…반드시 자산계급국가를 짓부수고 훼멸시켜야 한다’로 발전시켰다. 이 이념으로 러시아의 10월 혁명이 승리했으며 이어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탄생했다. 1917~1950년은 폭력이념 발전의 전성기였다.

2차 대전 후 폭력이념은 쇠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2차 대전이 끝나자 강력한 군사력을 해체하고 1944년에 연합정부에 가담한데 이어 1956년엔 의회주의를 주장하면서 폭력이념을 포기하였다. 소련 공산당은 1956년 18차 당대회에서 폭력이념을 포기하고 의회주의 노선을 주장하였다. 1977년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공산당은 <민주자유 중 사회주의를 실현하자>는 <연합선언>(일명 유럽공산주의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유럽 전역에서 폭력이념은 막을 내렸다. 일본 공산당은 1970년 11차 당대회에서 폭력이념을 포기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중공)은 소련을 수정주의라 비판하며 ‘국제 무산계급의 혁명투쟁, 피압박 인민과 민족의 해방투쟁, 많은 국가의 혁명적 군중운동을 지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혁명을 수출하였다. 이를테면 말레이시아·태국·캄보디아 등 공산당의 폭력혁명을 지원하며 경비를 대어주고 중국 경내에 그들의 방송국도 세워주었다.

그러나 중공의 폭력이념도 오래 가지 못하였다. 중공대표대회에서의 세계혁명을 지지한다는 선언은 11차(1977) 당대회가 마지막이었다. 12차(1982), 13차(1987)에서는 이 문제를 회피하다가 14차(1992) 대회에서 ‘국제거래 중 우리의 사회제도와 이데올로기를 절대 다른 나라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였다.

중공은 이를 행동에 옮겼다. 1979~1989년에 말레이시아·태국·캄보디아 등 공산당의 폭력혁명을 지원하던 경비를 차단하고 방송국도 없애버렸다. 중공의 10년간의 설득 끝에 말레이시아 공산당은 1989년 당국과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무장을 해체하였으며 말레이시아 공산당도 해산했다. 또한 중공은 과거 피압박계급·민족 및 약소계층의 폭력과 과격행위에 ‘해방’, ‘혁명’, ‘정의’ 등으로 불러주다가 이때부터 ‘반군’, ‘테러’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1989년은 인류역사상 아주 중요한 한 해였다. 이 해에 소련이 해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당의 폭력이념도 세계 범위에서 막을 내렸다. 1990년대부터 새 시대가 열렸다. ‘폭력’, ‘혁명’의 이념은 소망되었다. 이제부터 정치체제를 포함한 모든 분쟁은 정치, 협상, 의회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였다. 이때부터 폭력혁명은 테러이자 범죄로 규정되었다.

문제는 정종마르크스주의로 자부하는 북한이다. 주권국가 중 유일하게 폭력이념을 고수하며 ‘남조선’을 무력으로 해방하고 한반도를 전쟁으로 통일한다고 떠벌인다. 북한은 테러국가, 범죄국가이다. 인류역사발전의 대세에 거역하므로 반드시 실패와 멸망을 자초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본연은 혁명가는 자기의 주장을 은폐하지 않으며 광명정대하고 양심적이어야 한다. 폭력이념을 고수하려면 의회에 참여하지 말고, 의회에 참여하려면 폭력이념을 포기해야 한다. 레닌은 노동대중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빈말하는 곳(중국어로 淸談館)인 자산계급의 의회에 절대 참여하지 말라고 호소하였다.

마르크스는 무산계급 혁명가가 자산계급이 차려놓은 자리에 들어가 돈푼이나 받아먹으며 일하는 자를 ‘한 그릇의 팥죽을 위해 장자권(長子權)을 팔아먹는 자’라고 비아냥거렸다. 자산계급의회에 들어가려는 자들을 비꼬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RO와 통진당은 국회에 들어오라고 해도 거절해야 하며 그래야 자기의 주장을 은폐하지 않는 광명정대한 양심적인 ‘혁명가’의 자격이 있다.

그런데 RO·통진당은 폭력이념도 고수하면서 의회에도 들어가려 한다. 자산계급의 의회에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말려야 할 북한도 한국 추종자들에게 돈을 대어주며 의회에 진입하도록 부추긴다. 이들은 모두 타락한, 광명정대하지 못한, 음모를 일삼는 ‘혁명가’들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자를 ‘바람도 피우고 정절비도 세우려 한다(又當婊子, 又立貞節牌坊)’고 비꼰다.

RO와 통진당에 대한 한국 국회와 국민의 모호한 인식은 더욱 한심하다. 북한의 이념을 옹호하고 한국에서 기회만 생기면 북한의 무력통일에 동참하겠다는 정당을 합법화하며 국회에 들여놓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상식에도 어긋난다. 그들이 아무리 실체를 은폐하고 궤변을 늘어놓아도 집회 때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법정당이며 국회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이석기와 RO·통진당을 심판하고 그 정당의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토록 긴 시간과 수없는 법정 변론을 거쳐야 하는가? 사회주의 중국에서 태어나 귀가 따갑도록 공산혁명이론을 들으며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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