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前 외교부 차관
김성한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前 외교부 차관

권력투쟁·탈북·학살 등 변수가 상승 작용해 문제 키울 가능성
북한이 核 포기 않는 한 계속돼… 韓·美 간 '作戰 역할' 분담하고
중국에 통일비전 설득하면서 分斷 고착 안 되도록 대비해야

지난 18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서울에서는 세월호 침몰 7개월 만에 국민안전처가 출범했다. 독재 체제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과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대두한 우리 국민의 안전 문제가 묘하게 겹쳐졌다.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국민의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할진대 북한에 '큰일'이 났을 때 북한 주민의 안전과 인권을 제대로 지켜낼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북한 급변 사태는 여객선이 좌초하거나 열차가 탈선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다양한 국가 비상사태 중에서 북한 정권이 통제할 수 없어 주변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개입할 가능성이 큰 사태를 의미한다. 권력 투쟁에 의한 무력 충돌, 북한 주민의 대량 이탈, 대량 학살 등 인권 악화, 핵무기 통제 실패, 외국군 개입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독립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복합적 상승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핵무기와 경제를 모두 갖겠다는 김정은 정권의 '핵·경제 병진(竝進) 정책'이 지속되는 한 북한에 체제 불안은 상존한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정권의 최후 보루로 생각한다면 북한 정권과 국제사회의 대결은 불가피하다. 장성택 처형 이후 엘리트 내부의 괴리, 시장경제의 확산, 김정은의 건강 이상,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 등 정권 안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변수는 많다. 북한이 대화에 나와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의 길로 접어들지 않는 한 급변 사태 가능성은 계속된다. 따라서 통일을 염두에 둔 우리로선 체계적 대응책이 필요하다.

역시 가장 어려운 것은 급변 사태 유무를 파악하고 대응 시점을 정하는 일이다. 북한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는 순간 우리 경제가 먼저 요동칠 것이다. 2014년 6월 말 현재 한국의 외환 보유액은 3665억50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약 3000억달러로 추산되는 외국 투기성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우리 자본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긴급 자금을 투입하고 외국계 단기 자금의 동요와 이탈을 막기 위한 신속한 대응 조치를 해야 냉철하게 북쪽을 보면서 급변 사태에 대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외부적으로 가장 큰 변수는 역시 중국이다. 중국은 국경 지역에 병력을 대규모로 증강하고 다른 국가들이 북한에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한반도 통일이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확신을 갖지 않는 이상 중국은 '반(反)통일 외세'가 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 통일 외교의 핵심은 중국이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지 않도록 통일 한국의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일이다.

급변 사태 대응의 중심축은 한·미 동맹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돌발적 난제(難題)를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북한 내 핵 시설에 대한 통제다. 핵 물질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신속하게 미군을 투입하려고 할 것이다. 결국 북한 내 민사(民事) 작전은 한국군이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작전 범위에 관해 한·미 간에 이견이 존재하므로 '개념계획 5029'에 나와 있는 한·미 간 역할 분담을 명확히 정리해 '작전계획'으로 전환해야 한다. 육상과 해상으로 넘어오는 북한 지역 내 대량 난민 및 이탈자에 대처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지난 5월 일민국제관계연구원이 전 세계 외교·안보 전문가 1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반도 통일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8.1%가 '북한 정권의 통일 반대'를 뽑았지만 둘째로 많은 전문가 16.3%가 '한국 정부의 준비 미흡'을 꼽았다. 이는 우리가 제대로 준비를 안 할 경우 통일이 커다란 도전과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설문에 참여한 중국 전문가의 25%가 '한국 정부의 준비 미흡'을 선택하여 한국 정부가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고 통일의 순간을 맞이할 경우 중국에 부담이 될 것을 염려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극도로 위험하고 복잡한 급변 사태 와중에 이를 통일로 연결할 수 있는 한국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 동맹국인 미국조차도 '한국을 제치고(Korea passing)' 중국과 은밀히 거래하여 또다시 분단 고착화의 길을 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역사적 과실(果實)은 준비된 자의 몫이다. 국민안전처 출범을 계기로 국내 안전과 대북 안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부처 간 협업에 기초한 위기 대응 체계를 제대로 정비할 수 있길 기대한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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